戰雲 감도는 대만 타이베이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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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9일 낮 홍콩에서 타이베이로 가는 캐세이 퍼시픽(CX) 400 기내는 썰렁했다.며칠 전만 해도 꽉 찼었다는 3백석의 좌석중 절반이 텅 빈 채,비행기는 양안(兩岸)의 군사적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는 의연한 대 만해협 위를날아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잘 아시잖아요.자리가 왜 비었는지.』 기내 승무원은 「미사일훈련」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기자를 데려다준 택시운전사도 「미사일」이란말은 별로 입에 올리지 않은 채 자못 한가히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통선거의 「표 분석」을 해댔다.
『중국이 정말 공격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대륙에 투자하는 대만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중국은 결국 이번 선거에서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의 표를 더 올려 놓는 결과만 초래할 겁니다.』 과연 토요일 오후의 타이베이 시내에서는 다가오 는 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 확성기를 동원한 선거유세가 여전히 벌어지고있었다. 그러나 주말 퇴근길에 기자와 만난 무역회사 여직원 추메이링(邱美玲.29)은 주말을 맞은 회사원답지 않게 우울한 표정이었다.
『「탈출」이오? 그건 일부 돈 있거나 외국국적을 이미 취득해놓은 사람들의 민감한 반응일 뿐이에요.나는 어디 떠날 데가 없어요.』 중국의 미사일발사 실험 이틀째-.
『미사일발사가 시작된 8일 이후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1주일에 평균 1백명 이상이 찾아와 이민을 위한 건강검사를 받고 간다.이들 대부분은 뉴질랜드와 미국.캐나다로 이민 갈 궁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타이베이 시내의 타이안(臺安)병원.
이민자의 건강검사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이 병원 의사 황후이안(黃暉安)씨는 미사일보다 매일 밀리는 건강 검사가 더 신경 쓰이는 일이라며 씁쓸히 웃었다.
타이베이 시내 고급주택가인 텐무(天母)지역의 부동산업자들은 요즘 새벽에 걸려 오는 전화에 잠을 설치기 일쑤라고 한다.
『외국에 나가 있는 집임자가 집을 팔아 달라고 전화를 해오는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싼 값이라도 좋으니 집을 빨리 팔아 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들도 많지요.중국 미사일이 집값을 떨어뜨리고있습니다.』 부동산업자 예줘완(葉佐源.40)의 말이다.그러나 현지 외국인들의 반응은 대만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민감하다.
우리 무역진흥공사의 타이베이 무역관은 8일 본사에 긴급보고를했다. 「대만주재 업체들은 현재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품이 아니면 바이어와의 상담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지만 전쟁발발 가능성은 극히 낮은 만큼 아직 구체적인 안전조치 등을 취하고 있진 않다.오히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길어지면 전자.중공업.섬유등 대만과 경쟁하는 분야에서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교민들도 적잖은 동요를 보이고 있다.국립 정치대(政治大)에서 유학하고 있는 성시훈(成始勳.31)씨는 『한국 유학생들도 이미 일부가 대만을 떠났다.서울의 가족들도 자주 전화를 걸어 귀국을 재촉하곤 한다』고 말했다.
7면 『대만르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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