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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배우 이숙] ① 정치인 남편 사별, 반신불수 엄마 10년 간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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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한국의‘우피 골드버그’라고 하면 어울릴까? 인기 드라마‘이산’(MBC TV)에서 정순왕후 (김여진)를 보필하는‘강상궁’으로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이숙. 이름보다‘전원일기’에서 유명세를 탔던‘쌍봉댁’으로 더 잘 알려진 그 녀는 올해 벌써 데뷔 30년에 이른 중견 배우 로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오죽하면‘최다 상궁 배우’‘최다 식모 배우’ 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연기자로 데뷔하고 첫 배역이 떡장수였으니 말 다했지 뭐. 그것도 원래 내 배역이 아니었는 데 선배가 펑크 내는 바람에 꿰찬 거예요. 그 뒤로‘시장 사람들’이라는 드라마에서 순대 장 수 아줌마로 출연했는데 방송국으로 그 순대 아줌마 어느 시장에서 데리고 왔냐며 전화가 불이 나게 왔대요. 제가 진짜 시장에서 순대를 팔고있는아줌마처럼보였나봐요(웃음).”

웃음 속에 가려진 아픈 과거, 지금도 남편이 보고 싶다

특유의 호쾌한 웃음을 날리며 시원한 오렌지 주스 한 잔을 건네는 그녀, 현재 서울 잠실 종 합운동장 근처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하 고 있다. 장성한 아들은 일찌감치 결혼해 손자, 손녀까지 안겨줬고 막내딸은 중국에서 유학 중이다. 남편과는 안타깝게도 14년 전 사별해 해마다 명절이면 자식들과 함께 성묘를 간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떴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제가 밖에 나가 워낙 활기차고 센 모습만 보여줘서인지, 사람들은 제가 혼자 사는 여자일 거라고는 쉬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워낙 내색을 안한 탓도 크죠. 자존심 때문인지 남편 없는 여자라는 말은 또 듣기 싫어서 힘들어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답니다.”

14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은 선거에 두 번이나 나갔던, 제법 알려진 정치인이었다. 두 번째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스트레스성 뇌출혈로 세상을 등진 남편은 이숙에게 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멋진 남자였다.

“남편을 중매 반, 연애 반으로 만났는데, 나중에 정치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학창 시절 때 꿈이 여성 정치인이었거든요. 웅변대회 나가면 온갖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고, 또 사람들 앞에 나가서 연설하는 게 좋아 정치 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마침 저랑 꿈이 같은 남자를 만났으니 일종의 대리 만족 같은 걸 느꼈나 봐요. 결혼하자마자 남편은 본 격 선거 운동에 들어갔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정치만 생각하고, 항상 자신보다 는 남을 먼저 챙기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자연 스럽게 존경심이 생겼죠.”

한번은 남편의 선거 운동이 하이라이트를 치달을 때였다. 선거 운동 본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그녀에게 이제 남편 이미지를 봐서라도 파출부나 억척스러운 아줌마 역할은 그만하 면 안 되냐는 부탁을 해 왔단다. ‘그럴 수도 있겠다’며 잠시 고민한 이숙은 얼마 지나지 않 아바로“그럴수는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맡은 배역이 그런 거지, 내가 그런 게 아니잖아요. 또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힘없는 사람들을 부끄러워하면 그 또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길로 바로 남편한테 달려가서 난 지금처럼 쭉 일할 터이니, 당신은 진심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인이 돼라고 충고했죠. 남편도 생 각이 짧았다는 듯 미안해 하며 그 뒤로는 내일을 누구보다 응원해 줬고요.”

주말이면 집으로 찾아오는 남편의 지인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대접하고, 또 촬영이 없는 날은 남편을 도와 선거 운동에 동참했던 이숙은“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남편을 참으로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감회에 젖는다. “그 사람의 장점이면 장점, 단점이면 단점 하나도 다 내 책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싶던 정치, 제대로 한번 해보고 가기나 하지….”

생각지도 못했던 남편의 죽음은 하루아침에 그녀가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를 앗아갔다. 그 누구보다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남편 의 부재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고, 남편이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진 빚은 고스란히 이숙에게로 돌아왔다. 대학생인 아들, 초등학생인 딸을 키우고 생계를 꾸려나갈 생각을 하니 제대로 슬픔에 잠길 여유조차 없었다.

“도저히 이 지옥 같은 현실이 믿겨지지 않아서 방문을 잠가 놓고 아이들 몰래 통곡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남편이 없는데도 지 금껏 이렇게 혼자 잘 살고 있는 것도 신기하기 만 하고요. 겉은 멀쩡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동 안 반 장애인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예요. 한쪽 팔을 잃은 사람처럼 늘 뭔가에 넋을 잃은 채 슬픔을 안으로 삭이면서 하루하 루를 버텼죠.”

이숙의 인생 고백 ② "파출부 역이나 하는 주제에"란 말에 다신…

이숙의 인생 고백 ③ '무릎팍도사'에 꼭 출연하고 싶다고 한 건…

취재_김미영 기자 사진_임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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