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아침은 지금 일곱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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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는 봄/날은 아침/아침은 지금 일곱시/…/하느님은 그분의하늘에 계시고/세상은 만사태평!』영국사람 로버트 브라우닝(1812~1889)의 「노래」라는 짧은 시의 처음과 끝이다.소쿠리를 크기 순서로 포갠 것처럼 해.봄.날.아침,이 렇게 시간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일곱시라는 한 순간에 이 모든 시간의 단위를모아 포갠다.그렇게 해서 만사태평에 닿는다니,이 시(詩)속의 봄날 아침 일곱시에서 농사 냄새는 나지 않는다.조선사람 남구만(南九萬.1629~1711)의 봄날 은 이른 새벽부터 다르다.
『동창이 밝았느냐,노고지리 우짖는다/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넘어 사래 긴 밭은 언제 갈려 하느니.』농사와 관련되면 봄은 바쁜 계절일 수밖에 없다.
지난 5일은 경칩이었다.개구리와는 달리 경칩날과 상관없이 사람은 놀란다.길을 가다 상점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도 화들짝 놀란다.생각이 많아 생각 때문에 놀라는 것이다.그나마 남아있는 농민의 75%가 10년안에 농사를 걷어치 우고 말겠다고 한다는 농촌경제연구원의 이번 조사결과도 실은 우리나라 농업의 늙고 수척한 얼굴이나 진배없이 친숙한 사실이다.그런데도 놀란 느낌은 증폭돼 이렇게 외친다.『75%가 아니야.실은 1백%일거야.10년안에 우리나라엔 농민이라곤 아주 없어지는거야.』 『얼룩배기 황소가/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란 하늘 빛이 그리워/…/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며 정지용(鄭芝溶)이 그리워한 것.농촌.농민.농업,이 세가지가 모여 돋보기 아래서 햇살이 만들어내는 강하고 유일한 초점처럼 된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었다.지금 1만년 이래 농업시대의 이런 삶의 양식이 이 나라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의 시간.공간.인간,이 「3간(間)」을 위해 지금 우리는 울면서 무언가를 강구해야 할 때다.우리나라 농업시대는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가고 있는 「하느님의 외아들」이다.우리더러 말할 것이다.『나를 위해 울 것이 아니라 너와 네 자녀들을위해 울라』고.영혼이 육체와 떨어지게 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부른다.농촌.농민.농업,이 세가지는 지금 서로 완전히 분리되려 하고 있다.농민은 탈출이 가능할 것이다.지금 있는 우리나라 도시민도 80%는 이렇게 탈출한 농민 ,아니면 그 아들.손자다.
잘 살고 있다.그러나 마지막 남은 농민이 다 떠나고 나면 농촌(자연)과 농업(식량산업)은 죽은 것이 된다.
경칩에서 춘분에 이르는 보름 동안이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보기론 가장 을씨년스런 철이다.건조한 겨울의 끝이라서 언 땅으로부터 풀린 흙먼지가 낮은 공중을 채운다.땅껍데기에 청결한 악센트를 군데군데 주던 눈은 녹아 없어진 다음이고, 새 잎은 아직 나지 않고,온 세상은 몇포기 상록수를 제외하면 쓰레기와 콘크리트 색깔이 된다.아닌게 아니라 여기저기 버린 쓰레기만 묻힐 데없이 자유롭게 풀려 굴러 다닌다.다만 하루하루 보드라워져 가는햇살 때문에 들뜬 새들의 높은 음자 리표 지저귐만은 이 천이(遷移)의 을씨년스러움이 꽃피는 계절로 가는 암호라는 것을 알려준다. 남아 있는 농민 가운데 75%가 농사에서 손을 떼 가는앞으로 10년은 경칩에서 춘분에 이르는 보름동안과 같은 비참한시절이 될 것이다.우리나라 농업인구는 총인구에서 현재 약 13%를 차지한다.10년 뒤면 홍콩의 0.8%,싱가포르 의 0.3%에 육박할지도 모른다.높아도 미국의 3%,영국의 2%를 넘지는 못할 것이다.이 기간에 우리는 엄청난 식량쇼크와 환경쇼크를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70년대에 겪었던 오일쇼크는 여기에 비하면 차라리 사소했을지 모른다.
『시간은 있을 것이니,시간은 있을 것이니/그대가 만나려는 그얼굴을 만나기 위해/얼굴을 가다듬을 시간은 있을 것이니/…/그대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1백번의 우유부단(優柔不斷)을위한 시간.』T S 엘리엇(1888~1965)의 시 「J A 프루프록의 연가(戀歌)」의 한구절이다.우리에게 이런 1백번의 우유부단을 위한 시간은 없다.우리의 이 봄 아침 일곱시는 만사태평도 아니다.
소치는 아이를 불러도 대답할 사람이 없어지려 하고 있다.『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를 힘없이 자주 중얼거리고 있을 것인가,자연과 농업을 지켜나갈 전혀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낼 것인가.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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