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백악관의 ‘잘못된 선택’부시 최측근이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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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거짓말 정부
스콧 매클렐런 지음, 김원옥 옮김
엘도라도, 376쪽, 1만8000원

내부 고발자의 고백은 어떻게든 사람을 잡아 끄는 모양이다. 지난달 미국에서 나온 책이 벌써 한국어로 번역됐다. 아마존 닷컴과 워싱턴 포스트 판매 집계 1위도 차지했단다.

이 고발자가 감히 까발리는 대상은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 백악관이다. 저자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측근을 가까이서 지켜본 ‘매트릭스’였다. 매트릭스란 비밀 경찰국이 백악관 수석대변인을 칭하는 암호명이다. 그는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리크 게이트 같은 굵직한 사안에서 백악관의 입이였다. 부시를 주지사 시절부터 보좌했던 ‘텍사스 사단’의 일원으로, 저자가 퇴임할 때 부시는 저자의 부인에게 위로 전화까지 해줬다.

그런 이가 자신이 몸바쳤던 정권을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하는 회고록을 내놓았다. 세월이 흐른 뒤도 아니다. 레임덕에 시달리더라도 아직 시퍼렇게 권력을 잡은 시점이다. 백악관도 속이 쓰렸던 것 같다. 그를 이어 대변인이 된 데이너 페리노는 말했다. “우리는 슬프고 당황스럽다. 우리가 알던 스콧이 아니다.”

배신자로 찍히면서까지 책을 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보다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백악관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원제도 『무슨 일이 일어났나: 백악관 내부와 워싱턴의 기만 문화(What Happened: Inside the Bush White House and Washington’s Culture of Deception)』로 잡았다.

그가 말하는 ‘백악관에서 일어난 일’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라크전은 중동 민주주의에 대한 대통령의 꿈이 영향을 미쳤다. 부시는 무슬림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온 국민이 전쟁에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대량살상무기였기 때문에 부시는 무기의 존재를 부인하는 정보는 무시했다. 자기 기만에 빠진 셈이다. 게다가 보좌관들 때문에 부시는 멍청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자신의 평판만 보호하는데 철저한 사람’이었고, 체니 부통령은 모든 일을 비밀스럽게 처리했다. 칼 로브 정치고문과 캐런 휴즈 홍보담당 차관,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은 ‘부시를 조종하는 3인방’이었다. 이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 조작된 캠페인을 계속 펼쳤고, 저자에게까지 거짓말을 해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만이라면 2% 부족했을 것이다. 책의 미덕은 대형 사건이 터졌을 때 부시의 즉각적 반응, 언론과의 신경전 등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데 있다. 부시가 언론에 식은 땀 흘린 브리핑 현장이나, 이라크전의 부상병 병동을 찾았다가 눈물 훔친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눈에 어린 회의감을 보았고, 자신이 내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대한 흔들림도 보았다”는 식이다.

저자의 단상이 늘어지는 부분도 있다. 급하게 번역해서인지 ‘을·를’을 잘못 쓴 곳도 있다. 하지만 “자기 기만은 인간의 본성이며 우리 모두 가끔 그것에 빠져든다”거나 “부시가 저지른 실수 중 첫째는 이라크와 군사 대치에 뛰어든 일이고, 둘째는 첫 번째 실수를 깨닫지 못했다는 점”처럼 다시 읽게 되는 구절도 있다. 수렁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안 보이는 현 정부 구성원에게도 권한다.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라, 당파를 떠나 협력하라는 조언이 절절하다. 저자가 정말 돈과 명성이 아닌 대의 때문에 책을 냈을지 판단해봐도 좋겠다. 그가 배신자인지, 애국자인지는 독자가 책에서 뭘 얻느냐에 달렸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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