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카레라스,유명 기악곡에 가사 실어 노래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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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자신을 신이 내려준 미성(美聲)의 소유자라고 상상해보자.또 자신이 좋아하는 교향곡이 여럿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아름다운 선율에 가사를 붙여 열창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이같은 꿈을 실현시켜 화제를 낳고 있는 테너 호세 카레라스(50)가 지난 12일 런던 로열 칼리지 오브 뮤직 강당에서 공연을 가진데 이어 이튿날 숙소인 리젠트파크 호텔에서 기자회견을가졌다. 『모차르트.브람스.리스트 등이 남긴 아름다운 기악곡을들을 때마다 그들의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어왔습니다.불후의 기악곡에 알맞는 가사를 실어 노래하면 관객들이 느끼는 감동의 폭도 더 한층 깊어질게 틀 림없을것입니다.』 그가 지난 수년간 진행시켜온 이 작업이 마침내 결실을 본 것이 최근 에라토 레이블로 발매된 『열정(Passion)』이라는 로맨틱한 제목의 음반이다.
이 음반에서 그는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즈 협주곡』,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내게로 가까이)』,베토벤의 『비창 소나타(그대를 기억해요)』,알비노니의 『아다지오(失戀)』,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그대를 꿈꾸며)』등 음 악팬들의 귀에 익은 14곡의 명곡을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짧은 턱수염과 구레나룻 탓인지 텁텁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인 그는 이번 음반 발매와 관련,『아름다운 곡이 너무많아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무척 고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나타 등의 기악곡은 작곡 당시 특정 악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어서 목소리로 소화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이들 작품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선 음반 제작자들이 여성들의 눈동자 위에 습도 감지기를 설치한 뒤 여러 작품을 틀어준 다음 「감성(感性)반응」을 체크했다는 소문마저 보도되기도 했다.눈자위가 촉촉해지는 정도를 측정해 여성팬들에게 가장 호소력있 는 작품을 골랐다는 것.
가사는 원곡의 분위기와 감흥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탈리아.스페인 등의 시구(詩句)를 인용해 붙였다.
가사를 쓴 돈 블랙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주제가 『평생의친구들』로 잘 알려진 인물.카레라스는 이때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은 바 있다.
반면 이같은 시도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위대한 고전작품을 제멋대로 편곡,본래의 감흥과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 대중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상업성의 소산이라는 지적도 있다.
카레라스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카루소.질리.스키파.스테파노와 같은 위대한 성악가들도 이같은 시도를 한 적이 있다』며 『고전음악이라 할지라도 시대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며 청중들도 이를 원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현재 브라질 등 남미를 비롯,아시아.유럽 등지의 해외공연 일정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그는 이번에 발표한 신곡들도 레퍼토리에 넣어 기회 있을 때마다 부를 계획.
한국 방문여부를 묻자 『개인적으로 아시아 국가에 깊은 호감을갖고 있다』며 『1년 내에 한국 공연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카레라스는 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오는 6월 도쿄(東京)공연을 시작으로 올해 전세계 순회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런던=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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