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감정 기술, 세계 표준화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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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요원들은 날마다 주검과 마주한다. 서울 본원과 부산 등 4곳의 분원에 근무 중인 296명의 요원들은 매년 20만여 건의 시신들을 부검 및 감정한다. 국과수 요원들이 밝혀낸 사인은 수사의 결정적 단초가 되곤 한다.

1955년 개소한 국과수에서 최초로 여성 소장이 탄생했다. 정희선(53·사진) 전 법과학부장은 10일 행정안전부에서 11대 소장 임명장을 받았다. 78년 입소한 그는 약독물과장과 마약분석과장 등을 거치며 굵직한 사건을 맡았다.

‘가수 김성재 사망사건’도 “누구보다도 국과수를 사랑한다”는 그의 손을 거치며 실마리를 풀었다. 95년 가수 복귀를 준비하던 인기그룹 ‘듀스’의 전 멤버 김성재씨가 갑자기 사망했다. 경찰은 당초 28군데에 발견된 주삿바늘 자국 때문에 사인을 ‘약물과다복용’이라고 봤다. 그러나 정 소장은 300종이 넘는 마약 성분을 검토하면서 ‘마약 중독’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러곤 꼬박 열흘간 밤을 새우다시피하며 독극물 검사를 했다. 그 결과 동물마취제의 일종인 ‘졸레틸’ 성분을 김성재씨의 몸에서 찾아냈다.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최근에 발생한 ‘고속도로 의문사’ 사건 당시엔 담당 연구원에게 다양한 독성 검출법을 조언했다. 정 소장의 도움을 받은 요원들은 3주 동안 매달린 끝에 혈액에 포함된 미량의 ‘복어독’ 성분을 발견해 냈다.

정 소장은 대학생 시절 오수창 전 국과수 소장의 강의를 듣고 국과수 요원이 될 것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시신에서 미량의 약물을 검출해 사인을 밝혀내는 일을 한다는 설명이 과학자를 꿈꾸던 정 소장을 매료시킨 것이다.

“처음엔 결혼 전까지 3년만 일할 계획이었다”는 정 소장은 “항상 새롭고 흥미진진한 일에 빠져 살다 보니 벌써 30년이나 흘렀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국과수의 약물 및 마약 감정 분야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최근 5년 동안에만 약물 및 마약 관련 연구논문 40여 편을 발표하고 관련 특허를 4개나 출원했다.

정 소장은 3년 임기 동안 그려 나갈 국과수의 미래를 ‘신뢰’와 ‘표준화’로 요약했다. 정 소장은 “국과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 높이는 데 힘쓰고 싶다”며 “감정 기술을 아시아에 전수해 우리의 기술을 세계적인 기술로 ‘표준화’하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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