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국문화지도 <24> 상하이는 ‘패션 용광로’ …전 세계 명품이 누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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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명품 브랜드 상하이 탕의 패션쇼. 전통과 달리 무릎 위까지 올라 오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치파오가 인상적이다. [이매진차이나]

리슈몽 그룹은 카르티에·피아제·몽블랑 같은 최고급 명품을 소유하고 있는 스위스 회사다. 리슈몽이 거느린 명품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브랜드는 바로 ‘상하이 탕’이다. 1994년 홍콩 출신의 데이비드 탕이 만든 종합 패션 브랜드로 중국 청나라 시대의 전통 의상인 치파오를 현대화한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중국 전통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상하이 탕’이 세계 명품 대열에 합류한 것은 상하이 특유의 국제적이고 세련된 감각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이름처럼 상하이는 중국 패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다.

2004년부터 상하이에서 패션쇼 기획 등의 일을 해 온 신옌펑(29)은 미국 뉴욕에서 금융을 공부한 재원이다. 뉴욕 유학 시절 패션에 흥미를 느낀 그는 고향인 상하이에 돌아와 패션쇼 기획뿐만 아니라 패션 관련 콘텐트 컨설팅과 광고 등 분야에서 일하면서 현재 상하이의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그는 “중국인은 지금 패션 공부 중”이라고 했다. “9년 전 미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나 역시 옷 입을 때 ‘코디네이션’이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상하이에선 중·고생들도 이걸 알고 있죠.”

신옌펑은 “상하이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패션쇼를 기획해 왔는데 최근엔 패션쇼에 참석하고자 하는 일반인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패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상하이 사람들=중국의 원미디어그룹에서 발행하는 패션 잡지 ‘밍(明)’의 펑징징(26) 기자는 “상하이와 베이징 사람들은 패션에 대한 관심의 각도가 조금 다르다”고 했다. “베이징 사람들이 이제 새로운 브랜드나 새 트렌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면 상하이 사람들은 다른 해외의 대도시처럼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입을까를 고민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두 도시가 패션을 대하는 관점은 이렇게 조금 다르지만 열기는 비슷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에게 최신 패션 트렌드를 소개하는 중국의 패션 잡지 발행은 크게 늘었다. 베이징의 북과원중한국제학원(北科院中韓國際學院)에서 패션 스타일링을 강의하는 한국인 류현식(33) 교수는 “중국에 『코스모폴리탄』이나 『엘르』 『보그』 같은 패션 잡지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이 10여 년 전”이라며 “최근 2~3년 사이 발행 부수가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는 “패션에 대한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무엇이 정말 멋진 패션인지, 소비자 스스로 이해하려는 욕구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패션 잡지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고 브랜드를 서로 비교도 해 보고 전체적인 트렌드를 읽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류 교수는 “상하이가 그 정점에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요즘은 일본계 패션 잡지 창간이 부쩍 늘고 있는데 일본 매체들은 어디서 얼마주고 뭘 사야 하는지를 다루는 ‘패션 정보지’처럼 만든다. 해외 명품 말고도 좀 더 합리적인 가격의 수많은 브랜드를 다루는 이런 유의 잡지는 젊은층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패션 콘텐트를 수용하는 상하이 사람들의 의욕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左)청나라 시대 상하이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전통 의상 치파오. [중앙포토]
(右)2005년 10월 상하이 탕 패션쇼에서는 화려한 중국 전통문양이 가미된 ‘나이트 가운’ 이 선보였다. [AFP]

◇외국계 기업 다니는 상하이 사람들이 패션 리더=지난달에는 한국의 패션잡지 『쎄씨』도 중국 전역에서 『쎄씨 차이나』 발행을 시작했다. 『쎄씨 차이나』의 왕쉬메이(王緖梅) 편집장은 “10여 년 전엔 중국에 ‘패션’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물론 중국을 대표할 만한 괜찮은 디자이너도 없었을 시절이다. 요즘은 해외 명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진출해 있는 곳이 중국, 그 중에서도 상하이다”라고 설명했다.

왕 편집장은 최근 상하이 사람들의 패션을 이끄는 것은 “‘외자(外資)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부터 상하이엔 멋쟁이들이 많았다. 이런 문화적인 배경에 더해 요즘 상하이의 다이내믹하게 발전하는 모습은 멋쟁이들을 더욱 부추긴다. 해외 투자가 중국 중에서도 상하이에 몰리고 그러다 보니 외국계 기업이 상하이에 넘쳐난다. 외국기업에서 일하는 상하이 직장인들은 월급도 많이 받고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수준 있는 패션 감각을 습득하게 됐다. 이들을 거리에서 자주 접하는 다른 상하이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의 패션을 동경하고 모방하면서 패션에 대한 눈높이가 자꾸만 높아져 간다”고 말했다.

패션 콘텐트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이런 열기를 반영하듯 상하이의 고급 쇼핑몰인 난징시루(南京西路)의 ‘플라자66(恒隆廣場)’에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명품이 매장을 내고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선 소규모 명품들을 모아놓은 ‘편집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알렉산더 매퀸’ 같은 브랜드도 100여 ㎡의 단독 매장을 운영할 정도다. 상하이 사람들이 국제 패션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데 얼마나 적극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왕 편집장은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대도시의 직장 여성들은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패션에서도 영향을 받을 만큼 스타일이 다양하고 적극적이다”라고 말했다.

베이징·상하이=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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