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정조사로 쇠고기 백서 만들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우리나라엔 백서(白書)가 거의 없다. 지난 3월 중앙SUNDAY가 1993년부터 2007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터진 대형 사건 20건에 대한 백서를 모두 정리해 분석한 결과 제대로 된 백서는 단 두 건뿐이었다. 백서는 ‘실패학 보고서’다. 실패도 소중한 자산이다. 실패 과정을 조사·연구해 교훈을 얻음으로써 미래의 성공을 위한 노하우로 삼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쇠고기 협상은 백서를 발간해야 할 중대한 실패 사례다. 마침 여야가 개원 협상을 하면서 ‘한·미 쇠고기 협상’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국회는 서둘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한 조사활동을 벌인 뒤 쇠고기 백서를 내놓아야 한다. 기존의 국정조사 보고서보다 훨씬 광범하고 자세한 백서를 내놓음으로써 그동안 분열돼 온 국론을 한 방향으로 모아야 한다. 동시에 정부도 인정하는 정책 실패의 뿌리를 파헤치고 시시비비를 가림으로써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나아가 실패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제도화함으로써 국제화로 점점 더 중요해질 대외 협상력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 폭발하는 사건이 터지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6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모두 6권 분량 3000여 쪽의 백서를 내놓았다. 결론은 ‘인재(人災)’였다.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해 실패가 반복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안일한 조직문화가 배경으로 지목됐다. 백서의 권고에 따라 44곳의 장치를 개선하고 자체 안전센터를 만들었다. ‘실패학의 본산’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 ‘실패 지식 데이터베이스’에 우리나라 사례까지 정리해 두었다.

백서는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재활용하는 검증장치다. 여야는 당리당략을 넘어서는 공정한 국정조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국정조사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그간 쌓여 온 불신을 털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력을 소모시켜 온 촛불도 몸에 좋은 쓴 약(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