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군부>9.民.군관계와 탈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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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 당국은 군-민(軍民)관계가 예전같지 않아 고심중이다.90년대 들어 군-민일치운동을 활발히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각한 경제난의 파장이 하전사(사병)들의 민폐를 부채질하고 이에 따라 군-민관계가 점차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군부대와 인근 사민(민간인)들은 오랫동안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하전사들은 사민 집에서 술(강냉이술.도토리술).계란 등을 구하고 사민들은 하전사들에게서 담배.설탕.소금을 구하는 등 물물교환이 관습화돼왔다.군부대 인근의 농장원들이 군 복을 「최고의 옷」으로 치기 때문에 군복이 민간에 흘러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경제난의 와중에 군수보급품도 예전같지 않아 하전사들이사민 집의 돼지.닭.오리 등을 훔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오죽하면 군인들을 「마적단」으로 부를 정도라고 한다.또 하전사들의 군생활이 장기화돼 마을 처녀를 임신시키는 사건도 간혹 발생해 원성을 산다.
군부대에 남녀관계 탄원이 접수되면 대개 사고친 하전사를 생활제대(철직제대)시킨다.생활제대자는 탄광.광산 등에 배치되며 사회에서도 손가락질 당하는 낙오자 신세가 된다.
그러나 이런 사례보다 탈영 때문에 생활제대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민군 군사건설국에서 경비소대장으로 일한 귀순자 임영선씨는 인민무력부 통계자료에 1천여명의 탈영병이 늘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밝힌다.그가 소속돼 있던 연대에서도 1천5백명 중에 탈영병이 10여명은 있었다고 한다.귀순자 박수현씨도 자신의 대대에서 매년 2명꼴로 탈영병이 발생했다고 전한다.귀순자 김선일씨는『군에 배포되는 강연 제강(요지)을 보면 탈영이 상당히 많다는것을 알 수 있다』면서 『다 처벌할 수 없어 감화교양을 한다』고 했다.
탈영병은 80년대 말부터 갑자기 늘어나는 추세라는게 귀순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대개 먹는 문제 때문에 탈영하는 경우가 많고 입대 2~3년차 하전사의 탈영이 흔하다고 한다.그밖에▶병영환경▶차별대우▶사상검토▶책벌에의 두려움 등도 탈 영의 원인이다. 임씨에 따르면 탈영병이 발생하면 중대에서 자체적으로 찾아나서며,찾지 못할 경우에 보위부에서 나선다.그는 『탈영병들이 뭘 훔쳐먹고 다니는지 대체로 살이 쪄서 돌아온다』고 전한다.
탈영병들은 통행증 없이 여행해야 하므로 산길을 걷는 경우가 많으며 열차의 지붕쪽 공간에 숨어 이동하기도 한다.이들은 소대장.분대장 등이나 군 경무원(헌병)에게 잡혀온다.
군-민관계의 악화,탈영병 증가 등에도 불구하고 군의 사기가 낮은 것으로 속단하기는 어렵다.군인들이 장기복무하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몰라 정치.사상학습을 무턱대고 믿는 경향이있기 때문이라는게 귀순자들의 지적이다.
북한 군당국은 또 하전사의 사기진작을 위해 사단장급(사단장.
사단 정치위원)도 1년에 며칠간 의무적으로 전사복장을 하고 하전사들과 함께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영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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