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新인간>14.英증권사 '플레밍스'파리지사 윤경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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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해 서른살이 된 윤경화(尹京華.여)씨의 직업은 국제증권세일즈다. 전세계 증권시장을 상대로 사자와 팔자의 주문을 연결시켜주는 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영국계 국제증권회사 플레밍스의 파리지사에서 한국및 일본담당으로 일하는 경력 2년의 「애송이」지만 「한국의 소로스」를꿈꾸는 당찬 젊은 여성이다.
尹씨는 『10년정도 더 세일즈 경험을 축적한 뒤 동북아 시장을 무대로 한 투자 분석.전략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궁극적으로 개인 사무실을 내 투자상담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의 직속 상사인 일본인 효도 노부에(45)도 『최고의 교육과 타고난 감각,강한 성취욕을 갖춘데다 국제딜러로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해야하는 문화적 배경까지 겸비했다』며 『尹씨의 성공은시간문제』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尹씨의 끼는 철저한 프로정신에서 엿볼 수 있다.「고객이 수화기를 내려놓기 전에 주문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요즘 새기는 직업신조다.
하루의 일과는 출근과 함께 서울과 도쿄(東京)의 시장동향과 정치상황 등을 분석하고 오늘의 추천-기피 종목 등을 나름대로 결정하면서 시작된다.이어 투자가를 설득하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요컨대 크레디 리요네 은행 등 굵직한 금융기관과 보험회사 등 자신이 맡고있는 10여개 기관투자가에 전화를 걸어 분석한 내용을 설명하고 끈질기게 설득작전을 벌이는 것이다.아직은 걸음마 단계라서 투기성의 위험한 종목은 되도록 피하고 우량주 위주의 안전투자를 권유한단다.그러나 여기서 어설픈 애국심은 배제된다. 한국 주식시장은 외국인의 주식지분을 15%로 한정,삼성전자 등 통칭 우량주는 사기가 힘들어 프리미엄을 붙인 장외거래의유혹도 있지만 피하고 있다.그래서 한국시장에 비해 위험부담이 적고 수익률이 높은 일본주식을 더 추천하고 있다고 한다.
『증권브로커는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투자가의 신뢰를 얻어 독자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제증권업무에 뛰어든 동기에는 개인적 관심 이외에 한국의 국제화에 일조할 수 있다는 자긍심도 작용했지만 어설픈 애국심은 투자가들에 오히려 한국시장에 대한 인상만 흐리게 만든다고 尹씨는 말한다.
이렇게 해 尹씨의 손을 거쳐 성사되는 거래는 일본의 경우 1주일에 보통 10건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LG정보통신 등 한달에10건꼴.
거래규모는 회사기밀이라 말할 수 없으나 단지 1회 사자주문량이 평균 1백만달러(약7억9천만원)정도라고만 귀띔했다.줄잡아 1주일에 1천만달러(약79억8천만원)이상을 주무르고 있는 셈이다. 플레밍그룹이 지난해 4억8천만파운드(약5천7백60억원)의운영수익과 9천만 파운드(약1천80억원)의 순이익을 남긴 국제적 투자금융및 증권그룹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비중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尹씨가 갖춘 조건과 의지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장래는 보장된 것이 분명했다.
국제증권업무에 필수인 국제감각을 갖춘데다 학벌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최고 수준의 교육적 배경을 자랑하고 있다.
***영.불.일어 모두 능통 스웨덴 대사 등을 지낸 부친 윤하정(尹河珽)씨를 따라 어려서부터 일본.스웨덴.프랑스 등지를 순회하며 산 덕택에 불어.영어.일본어가 유창할 뿐 아니라 국제적인 교양과 매너도 수준급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 등 프랑스 정계를 주름잡는 대부분의 유명정치인이 거친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외교학을 전공한 후 에르베 드 샤레트 현 외무장관 등이 졸업한 최고의 경영대학원 과정인 고등상업학교(HEC)에서 경영학으 로 전공을 바꿔 수학하는등 프랑스인도 부러워하는 화려한 학벌의 소유자다.
이쯤되면 출세(?)는 보장받은 셈이다.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94년1월 HEC를 졸업하자마자 베어링증권에 발탁돼 한국.일본.대만 등 3개국 시장을 대상으로 주식세일즈 업무를 맡았다.
국제증권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베어링사건이 일어난 지난해 7월 현재의 플레밍스로 자리를 옮겨 8명의 외국인과 함께 일하고있다. 한국에서 산 기간이 10년도 채 안되지만 어쭙지않은 혀꼬부라짐은 없었다.완벽한 우리말 솜씨로 미루어 자신이 한국인이란 점에 대단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한때 시앙스-포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일할 생각으로 언론계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그러나 『지역적 고정성이 적고 「세계」라는 넓은 사회와 시장을 무대로 꿈을 펼칠 수 있는 매력에 이끌려 증권전문가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그녀는 털 어놓았다.
***고객 신뢰 쌓일때 보람 경험많은 베테랑들이 자료분석보다는 감(感)에 더 의존하는데 반해 尹씨는 초보자로서 자료를 신뢰한다.그 덕택인지 지난 2년동안 고객에게 손해를 입힌 적이 없어 다행이라고 한다.업무의 성격상 자신의 판단으로 고객의 부를 늘려주는 데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보람은 날이 갈수록 쌓여가는 고객들의 신용이란다.
그는 요즘 회사일과 별도로 주식 분석.전략가가 되기위해 미국에서 시행하는 공인재무분석가시험(CFA)을 준비중이다.유관기관에서 3년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내년께 합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도 인생의 절반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편 대견하기도 하지만 늘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기회만 주어진다면 고국으로 돌아가 일(job)도 잡고 결혼도 한국남자와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란다. 그러면서도 『국제증권업무는 경쟁이 워낙 심해 권투경기처럼 승자와 패자가 곧바로 판가름나므로 언제나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산다』는 윤경화씨.미혼인 까닭인지 마냥 앳되어 보이던 그녀의 얼굴에 어느새 국제 증권전략가로서의 매서움이 서려 있었다.
은행.보험社가 주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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