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중산층으로 … 올림픽 덕에 인생 바뀌었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장모와 함께 사는 류펑 부부는 케이크 촛불 끄기를 좋아하는 아들(5)을 위해 종종 ‘생일파티’ 이벤트를 연다. 왼쪽부터 부인 스리신, 류펑, 장모. [사진=정용환 특파원]

베이징 올림픽 개막(8월 8일)을 꼭 50일 앞둔 19일, 베이징(北京)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 쉬지청(徐繼成) 매체운영부 부부장은 “도시 현대화가 진행 중인 베이징시에 현재 3000여 개의 공사장에서 각종 건설이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올림픽 개최라는 국가 이벤트가 대규모·초고속 도시 리모델링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베이징대 셰신저우(謝新洲) 교수는 “대부분의 재개발사업이 올림픽 경기장 주변지역이라는 점에서 올림픽이 도시 정비의 촉매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2001년 7월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뒤 베이징 북동·북서 지역은 대규모 차이첸(<62C6>遷·재개발)의 초점이 됐다. 올림픽 유치에 따라 인생이 바뀐 사람들도 많다.

◇위안더수(袁德術·55)

베이징 동북쪽 차오양(朝陽)구 왕징 지역의 한 아파트촌. 중상급 이상의 아파트가 많아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위안더수는 4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7년 전까지만 해도 동부 외곽의 농촌에서 밭을 갈던 농부였다.

그의 인생은 그해 여름 중국이 2008년 여름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뒤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올림픽 경기장과 인접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대규모 토지수용 계획이 발표되면서 위안이 살던 집과 국가로부터 빌려서 농사 짓던 땅도 수용 대상이 됐다. 위안은 “베이징 올림픽이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시 정부는 이듬해 위안의 농민 호적을 비농민 호적으로 바꿔주고 창업자금도 지원했다. 위안은 시 외곽에 국수 가게를 장만했다. 2004년 위안의 마을이 택지개발에 들어가면서 이주 보상비로 100만 위안(약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위안은 50만 위안으로 35평짜리 아파트를 사고, 나머지는 채권과 펀드에 투자했다. 일제 중고차도 장만했다.

현재 위안 가족의 월 수입은 약 9000위안. 외국어학원 강사인 딸 징징(靜靜·25)의 월급(3300위안)을 보탠 액수다. 대학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징징은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지난해 돌아왔다. 그는 “마을 주민 중에는 수용 보상금으로 집을 두 채씩 산 사람들도 있고, 지난 3년간 증시 활황 때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번 사람들도 많다”며 “다들 올림픽 덕을 단단히 봤다”고 말했다.

◇류펑(劉鋒·40)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광고업체 주임인 류가 꼽은 생활상의 변화는 우선 집이다. 1999년 베이징 시내의 방 하나짜리 아파트에 살던 류는 은행 융자(35만 위안)와 부모로부터 빌린 돈을 합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북쪽으로 4㎞ 떨어진 시싼치(西三旗) 지역의 40평대 아파트를 샀다. 류씨는 “매달 5000위안(약 75만원)씩 원금과 이자를 갚다 보니 생활이 쪼들렸다”며 “무리해서 집을 산 것을 많이 후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1년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뒤 올림픽 스타디움이 건설되기로 결정되자 사정이 돌변했다. 50만 위안에 샀던 류씨의 아파트 가격은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년 20만 위안씩 뛰기 시작해 지금은 160만 위안(약 2억4000만원)에 달한다. 베이징 외곽을 연결하는 제5순환도로에 인접한 시싼치 일대는 7년간 대규모 택지개발이 집중된 지역이다.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으로 베이징 경기가 살아나면서 류와 5성급 호텔에서 근무하는 류의 부인 스리신(史立新·40)의 수입도 늘어났다. 부부의 한 달 수입은 약 2만 위안이라고 한다. 대출금의 상당 부분을 갚은 류는 2003년 아이가 태어나면서 베이징 교외에 위치한 이 아파트로 이사 왔다. 주거 환경은 탁월했지만 만리장성으로 통하는 고속도로 옆에 위치해 만성적으로 교통 정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문제도 곧 해결된다. 메인스타디움으로 통하는 도로가 7월 초 개통되기 때문. 류는 “도로 주변도 함께 정비돼 생활 환경이 쾌적해졌다”며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10년이 지나도 기대하기 어려웠을 일”이라고 말했다.

매달 아들(5) 교육비로 2200위안을 지출하는 류의 가족은 주말엔 자가용을 몰고 베이징을 벗어나 여행을 즐긴다. 아이에게 자연을 접할 기회를 자주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베이징=정용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