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아애나 솔직한 고백 영국이 들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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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비밀회견이 지난 20일 방영되자 예상보다 훨씬 엄청난 파문이 영국 사회전체를 휩쓸고 있다.
36년 에드워드8세의 양위(讓位)발표 이래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겨질 정도로 이번 회견이 무서운 「폭발력」을 지닌 까닭은 무엇보다 찰스왕세자의 왕위계승을 다이애나 자신이 걸고 넘어졌기 때문.
다이애나는 간접적이나마 찰스의 왕위계승에 반대하는 한편 아들윌리엄 왕자에게 왕관이 곧바로 넘어가기를 원하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윌리엄왕자가 나이가 찬다면 찰스 대신 현 여왕을 계승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고민많은 남편이 마음의 평화를 찾길 원하며 그런 뜻에서 대답은 예스』라고 주저없이 답변했다. 결국 다이애나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겠다는 의도와는달리 이번 프로는 본격적인 왕위계승 시비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방송됐던 찰스의 불륜고백 인터뷰에 더해 그녀마저 승마선생이던 제임스 휘트대위와의 부정을 시인,영국 왕실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전통적으로 영국 왕실은 국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그러나최근 왕세자부부의 불화를 비롯,앤드루왕자와 사라비의 이혼등 이어지는 스캔들로 국민들의 신망을 상실,존립정당성마저 위협받는 궁지에 몰려왔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말썽많은 영국 왕실을 이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입헌군주제 찬반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을게 확실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으로 모든 영국 언론이 4~5개면을 할애,이번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여론의 관심이 쏟아질수록 언론의 매도와 공격은 심해졌다』고다이애나는 비판했으나 이번 인터뷰로 어느 때보다 언론의 초점을모으게 된 것이다.
회견 내용에 대해 버킹엄궁측은 물론 경악하고 있다.특히 그녀가 『이대로 조용히 물러나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관련,향후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몹시 우려하는 분위기다.
회견 직후 침묵을 지키던 왕실측은 21일 전격 영국 대사로 활동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다이애나와의 타협을 통해 더 이상의 명예실추를 막겠다는 의도인 것이다.그럼에도 불구,찰스 측근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있다.찰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국방차관인 니컬러스 소암스는 다이애나를 『과대망상증 말기환자』라고 매도했다.
반면 대부분의 여론은 다이애나에 동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I-TV의 조사 결과 85%의 국민이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심지어 야당인 노동당측에서는다이애나를 혹평한 소암스차관의 퇴임을 요구하고 나설 정도다.결국 이번 인터뷰는 영국 왕실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지만 국민들의 동정을 사겠다는 다이애나의 의도는 일단 적중한 것으로분석되고 있다.
다만 이혼은 결코 안하겠다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왕세자부부의 공식 결별이 이제는 불가피해졌다는게 영국 언론의 일치된 견해다.
런던=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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