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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함께>"부부싸움 하면 이겨야 한다" 양정자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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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중병」에 걸린 부부들이 찾아오는 곳이다.병원 중환자실이라고나 할까.참다참다 못참은 아내.남편들이 매일 문을 두드린다.
이곳 부소장 양정자(梁貞子.51)씨는 하루하루가 힘겹다.불화문제로 시달리는 부부들의 사연을 하루평균 10여건 경청하는 탓이다.그것도 지난 30년동안.이래저래 상담한 사례가 10만여건에 이른다.그만큼 얼굴을 맞대고 남의 뼈아픈 속내 를 알알이 들여다본 사람도 없을 정도다.
그가 지난 30년간의 상담체험을 농축한 『부부싸움,하면 이겨야 한다』(다섯수레)를 냈다.제목이 무척 호전적이다.뒤엉킨 실타래를 부드럽게 풀기는 커녕 「문제부부」에 오히려 부채질하자는말인가.아니다.梁씨의 참뜻은 정반대다.
『부부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법적 관계입니다.행복한 가정을이루기 위해서는 배우자에게 의존하는 태도를 버려야죠.자주적 행동과 합리적 판단,또 그에따른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반면 가부장적 유교윤리와 서구 개인주의 사상이 마찰을 빚는 우리의 가정은 혼란스럽기만 하다.신구(新舊)질서의 이중적 구조에서 남편과 아내 모두 상황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을 펼친다.겉으로는 평등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론 「실리」 만 노리는 경향이 짙다. 특히 부부간에 다툼이 생기면 목소리만 높고 합리적 판단은뒷전으로 밀려난다.강산이 세번 바뀌는 동안 梁씨가 목격한 문제들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부부싸움도 다른 다툼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칼로 물베기』『하루저녁 자고 나면 끝난다』『사랑싸움』이라는 낭만적 정의는 그가 볼 때 한가한 옛이야기.오히려 이같은 감정적 접근은 나중에 싸운 원인과 상관없는 더 큰 불행을 부른다고 말한다.
『부부싸움의 본질과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할수 있는 전략.전술을 마련해야 합니다.』 실천방안으로▶상대의 상처를 건드리지 말라▶아이들을 무기로 삼지 말라▶나 자신부터 사랑하라 등 100여개가 넘는 전법(戰法)을 소개한다.간결한 문체에 관련 법조항.상담사례를 풍부하게 곁들여 「재미없는」 충고로는 들리지 않는다.상식 같은 말들이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감정에 휩쓸려 실천하기 힘든 덕목들이다.또한 우발적 충돌을 피하고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임전(臨戰)태세를 가다듬으라고 권한다.「싸움」은 지구력이 요구되는만큼 충분한 수면과 영양가있는 음식 섭취도 내세 운다.
하지만 梁씨의 목표는「배우자 길들이기」가 아닌 「함께 하는 부부」.병법 하나하나 모두 행복한 가정으로 귀결된다.단지 자주인(自主人)으로서의 남녀를 강조한다.행복은 누가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되기 때문이다.특 히 과거 불행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준비가 없는 사람은 이혼할 자격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부부싸움 해결사보다는 사랑의전도사에 가깝게 서있는 것이다.
일에 바빠 아직 결혼을 안한 梁씨는 『부부경험이 없는 사람이어떻게 남의 고충을 이해하느냐』는 질문에 『아기를 낳아야 산부인과 의사가 되느냐』고 살짝 미소지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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