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푼 ‘20년 쇄국’…아직 인터넷도 안되지만 대형 건물 쑥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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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08면

중앙아시아 최남단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은 20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1985년 집권한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전 대통령은 철권통치 속에 철저하게 고립 정책을 폈다. 카자흐스탄과 카스피해의 라이벌 아제르바이잔이 90년대 초부터 개방정책을 편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다. 15~18일 한승수 총리가 방문한 투르크메니스탄은 우리에게는 물론 서방세계에도 낯설기만 한 나라다.

한승수 총리, 자원외교 나선 ‘천연가스 부국’ 투르크메니스탄

중앙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

수도 아슈하바트의 거리 곳곳에는 니야조프 전 대통령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현 대통령의 동상과 대형 사진이 수없이 세워져 있다. 으리으리한 대통령궁 앞에는 30여m 높이의 탑 꼭대기에 두 팔을 펼쳐 든 최고 지도자의 전신상이 황금 옷을 입은 채 서 있다. 동상(사진)은 1시간에 15도씩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인다. 지도자의 얼굴이 늘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이곳에서 인터넷이란 단어는 생소하기만 하다. 최고급 호텔이자 한국 대표단 숙소인 프레지던트 호텔 매니저에게 “인터넷을 쓸 수 있느냐”고 여러 번 물었지만 “홧(What)? 홧?”이라며 고개만 갸우뚱했다. 호텔 2층의 프레스센터에 ‘다행히’ 인터넷선 2회선(실제는 전화선)이 설치됐다. 투르크 문화부 국장은 “대통령이 특별히 허락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오전 6~7시 한 시간만 사용할 수 있었다.

17일 아침 호텔에서 내려다본 아슈하바트는 붉은 태양빛을 머금은 하얀 대리석 건물들로 장관이었다. 곳곳에서 대형 건축물이 쑥쑥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한 발짝만 벗어나면 흙먼지 펄펄 날리는 사막(카라 쿰)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뿌연 먼지 너머로 저만치 보이는 검붉은 모래언덕이 병풍처럼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가스 위에 떠 있는 나라’

인구 504만 명(2006년 기준), 1인당 GDP 3400달러의 투르크메니스탄은 자원의 보고(寶庫)다. 확인된 천연가스 매장량만 23억t. 우리나라가 100년간 쓸 수 있는 양이다. 그래서 ‘가스 위에 떠 있는 나라’로 불린다. 하지만 서구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매장량이 확인된 것의 10배는 족히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리적 입지도 좋다. 서쪽으로는 카스피해를 통해 유럽과 만나고 동쪽으로는 카자흐스탄을 거쳐 세계 최대의 자원소비국인 중국과 연결된다. 이런 이유로 가스관과 송유관을 놓자는 서방 세계의 러브콜이 쇄도해 왔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변화의 바람은 니야조프 전 대통령이 2006년 말 갑자기 사망하고 베르디무하메도프 현 대통령이 권좌를 이어받으면서 시작됐다. 그는 낙후된 경제개발을 최우선 정책으로 내걸고 외자 유치에 나섰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서구 자본의 투자를 요청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7000㎞ 길이의 가스관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남쪽으로 향하는 1000㎞짜리 가스관(TAP) 건설에도 적극적이다. 유럽으로 가는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도 검토 중이다. 국가 소유인 카스피해 해상광구 30개의 지분도 외국 기업에 개방하기로 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16일 한 총리와의 회담에서 “우리는 개방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을 5~6번이나 반복했다. 30분 동안 마이크를 잡고 한국과 협력하고 싶은 사업 분야를 일일이 열거했다. 11월에는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기업도 본격 진출 나섰다

투르크의 한국 교민은 두 가족 9명이 전부다. 지난해 양국 교역 규모는 74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한 총리는 16일 회담에서 투르크 자원개발과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한국 기업이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선 해상광구 30곳 중 5곳에 공동참여를 제안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기술력과 개발 경험이 풍부한 한국의 참여를 환영하며,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30억 달러 규모의 세이디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과 11억 달러짜리 투르크멘바쉬 신항만 건설사업에도 한국 기업이 참여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는 시내버스와 택시 800대를 제공하기로 합의하는 등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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