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의 거꾸로 미술관] 정치, 예술로 들어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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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사시 덴묘야 [부시 對 빈 라덴 Bush vs. Bin Laden] 2001

'예술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믿음은 가히 도그마에 가깝습니다. 이는 곧 유미주의를 최선으로 간주하는 예술 수용 태도지요. 쉽게 말하면 예술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것이지 세상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군말하지 말자는, 일종의 예술지상주의입니다. 그러나 빼어난 조형미를 전면에 내세운 미술사의 걸작들조차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항시 '당대 역사의 산물' 로 이해하는 것이 학계의 추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혈이 낭자한, 전형적 일본화의 양식을 차용한 이 그림은 9.11 사태를 전후로 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현재진행형 갈등에 대해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개진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으로 분한 미국 대통령과 피떡이 돼 쓰러진 알카에다 총지휘관의 대조적인 모습! 불타는 세계무역센터도 장난감처럼 왼편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군요. 끔찍한 세계사를 은유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치고 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가면(假面)이 하는 역할입니다. 또한 예술의 시사성은 예술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p.s. 이라크전 발발 1주년을 맞아 전 세계가 다시 떠들썩합니다. '그 때 그 사건'을 잊지 말자는 요구일 것입니다. 하여 차츰 잊혀져 가는 사건을 소재 삼은 '시사적' 작품 하나 올려봤습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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