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부실건설문화>2.공공시설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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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구 외곽지역의 한 도로공사현장 감리단장 K씨는 요 몇달 사이 황당한 경험을 했다.설계도에는 바위가 5 지하에 위치한 것으로 돼 있는데 실제로 파보니 7밑에 있는등 바위 위치가 틀린곳이 10여군데나 됐기 때문이다.
서울지하철 7호선 한 건설현장의 철골반장 L씨는 더 아찔한 경험을 했다.지하파기 공사를 한뒤 양쪽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트러스(보강재)의 지름이 14㎜이어야 하나녹이 시꺼멓게 슬어 5호선공사때부터 사용한 것같 은 10㎜ 트러스로 시공해야 했다.트러스가 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찔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삼풍백화점 참사가 있었는데도 부실공사를 양산하는 관행들은 공공 시설물에서도 여 전 하다.
부실공사의 출발점은 엉터리 설계도다.전북 전주지역의 한 도로공사현장에 제시된 설계도는 약한 지반을 강화하는 공법이 잘못 지시돼 있어 부랴부랴 설계변경을 요청해야 했다.
이 현장의 S씨는『공사를 시작한뒤 설계가 현장여건과 맞지않아설계를 바꾸어야 하고,이로 인해 부실공사가 되는 경우도 잦다』고 말한다.
기술적 측면이 중요한 구조설계도 마찬가지다.현재는 구조기술사가 건축사로부터 구조계산을 의뢰받으면 구조계산을 한뒤 계산서만설계사무실에 보낸다.
이에 대해 구조기술사 윤호기(진원구조)씨는『제대로 된 구조설계를 위해선 구조계산 뿐 아니라 구조도면도 모두 구조기술사에 의해 그려져야 한다』면서『구조도면을 직접 그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려진 도면이 구조기술사에 의해 확인이라도 되 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삼풍백화점의 경우도 구조계산상 기둥크기는 80㎝인데 구조도면의 기둥은 60㎝로 그려져 잘못 시공된 결과를 가져왔다.
공공시설물의 시공은 삼풍사고 이전보다 개선됐다고하나 아직까지요원한 실정이다.
앞서 엉터리설계를 지적했던 감리단장 K씨는『교량등 도로 구조물에 들어가는 철근 배근간격도 안맞고 철근간의 묶음(결속)도 제대로 안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에 재시공 명령을 수차례나 했다』고 한숨지었다.
시설물의 기초보강을 위한 파일(콘크리트나 철제 말뚝)박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파일은 단단한 지반까지 박아야 지반보강 역할을 할 수 있다.파일박기를 할 때는 타격을 가한 항타(抗打)기록을 작성하고,최종 정착깊이와 관입(管入)량을 점검해야 한다. 파일이 단단한 지반까지 도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최종10회의 항타 관입량이 매회 평균 15~20㎜일 때까지 박아야하는 것이 규정이다.
그러나 최종 정착깊이를 점검하는 현장은 거의 없고,항타기록도나중에 대충 만드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다만 일부 공공 공사현장에서는 잘못된 관행들이 개선되고 있기도 하다.규격미달 트러스에 충격을 받았다던 L반장은 설계도보다10이상 공정이 많이 나갔다해서 더 공사한 부분을 철거할 때까지 공사를 중지하라는 감리단의 명령을 받고 신선 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장,특히 영세업체에 하청된 현장에서는기초에서 마감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대충대충 공사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팀장=김일(사회부 차장) ◇사회부=김기평.강갑생.김수헌 기자 ◇경제부=신혜경 차장(도시공학전문기자).박의준 기자 ◇부동산팀=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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