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병아리 펀드’ 100만 대군 경제 황금알이 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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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이주현(39)씨는 3년 전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어린이 펀드를 들어 줬다. 아들이 모은 용돈과 합쳐 매달 10만원씩 넣은 게 벌써 40% 넘는 수익이 났다. 돈이 불어나는 데 신이 난 아들은 시키지 않아도 용돈이나 세뱃돈을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 자산운용회사가 주최한 경제교실과 스키캠프에도 세 차례 다녀왔다. 올 연초 주가가 크게 떨어지자 아버지에게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이씨는 “수익보다 아들이 펀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경제와 금융의 원리를 익혀가는 게 더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한국 펀드시장에 ‘100만 고객 양병설’이 현실화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어린이 펀드 가입자가 72만 명에 달한다. 2005년 이 회사가 어린이 펀드를 팔기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업계 전체로는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자산운용협회 김정아 홍보실장은 “어린이 펀드는 장기·적립식이기 때문에 펀드시장의 안전판이 될 수 있다”며 “또 펀드시장의 잠재 고객을 키우는 양성소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만 가입자 시대=2005년 4월 미래에셋이 처음 어린이 펀드를 선보였을 때만 해도 가입자는 1만100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20만 명을 넘어섰고, 2006년 말 34만 명에 이어 지난해 말엔 67만 명으로 불었다. 어린이 펀드만 별도로 분류하는 기준이 없어 정확한 계좌 수 파악은 어렵다. 다만 가입자 71만5000명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설정액이 1조3800억원이고 전체 어린이 펀드 설정액이 약 1조9000억원임을 감안하면 전체 가입자는 100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적립식 펀드 전체 계좌 수 1552만 개의 6.4%, 설정액으로는 2.3% 수준이다. 하지만 어린이 펀드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계좌를 트는 어른들과 달리 대부분 1인 1계좌라는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삼성투신운용 허선무 상무는 “어린이 고객의 영향력은 겉으로 드러난 계좌 수보다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왜 늘어나나=1992년에도 옛 주택은행이 판 ‘차세대통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자녀가 태어날 때 가입해 매달 1만원씩 20년 넣으면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 주택청약예금으로 전환, 내 집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상품이었다. 한 달 만에 100만 명, 1년에 300만 명이 가입해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그러나 금리가 곤두박질하면서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4%도 안 되는 금리로는 내 집 마련은 꿈도 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2006년부터 분 펀드 바람이 파고들었다. 은행 적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에, 경제교실·스키캠프·어린이보험과 같은 부가서비스가 부모의 경제 교육열을 자극했다.

◇”세제 혜택 늘려야”=자녀 교육비는 어느 나라 부모에게나 큰 부담이다. 자녀가 성장한 뒤 한꺼번에 내려면 허리가 휜다. 미국·영국은 각각 2001년과 2005년 부모가 미리 자녀 교육비를 저축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529 교육저축제도’와 영국의 ‘어린이펀드(Child Trust Fund)’가 대표적인 예다. 저축한 돈을 교육비에 쓴다는 전제하에 과감한 세제 혜택을 주는 게 골자다. 반면 국내 어린이 펀드는 사실상 세제 혜택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10년간 1500만원까지 증여세 면제 혜택이 전부지만, 이는 다른 금융상품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철성 마케팅 부문 대표는 “부모가 자녀 교육비를 위해 장기·분할 저축을 할 때는 일정액을 소득에서 공제해 주는 제도 등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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