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도, 보고도, 결산도 ‘맘대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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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06면

의원외교의 상당수가 알맹이 없는 외유성 여행으로 흐르는 데엔 이유가 있다. 계획과 보고, 결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부실한 시스템 때문이다. 첫 단추에 해당하는 계획부터 허술하다. 목표가 뚜렷한 국제회의보다는 단순 의원외교의 비중이 훨씬 크다. 올해의 경우 총 49억7000만원 중 국제회의 개최 및 참석 예산이 11억여원, 의원외교 예산이 38억여원이다.

시스템 없는 의원 외교

구설에 많이 오르는 상임위별 시찰과 친선협회 방문 등은 모두 의원외교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를 조정ㆍ감독하는 체계는 없다시피 하다. 의원외교 활동에 관한 규정에 따라 의장과 부의장, 교섭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외교활동운영협의회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연말에 한 차례 모여 다음해 예산 총액과 방문할 상임위나 의원친선협회의 순번을 정할 뿐이다.

어디에 갈 것이냐는 철저히 나눠먹기식으로 정해진다. 현재 17개인 상임위별로 격년에 한 번 나가고 있다. 상임위원 임기 2년 중 한 번은 해외여행이 보장된 셈이다. 무역마찰이나 외교문제 등의 현안을 이유로 해마다 나가는 상임위도 적지 않다. 이럴 경우 상임위 임기 첫해엔 위원장 등 중진급 4명 안팎이, 둘째 해엔 나머지 의원 10여 명이 나가는 게 보통이다.

여기에 100개가 넘는 의원친선협회와 의원외교협의회도 몇 년에 한 번씩 상대국 의회 방문을 위해 외국행 비행기를 탄다. 방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 상임위나 친선협회ㆍ외교협의회 등의 몫이다. 조율 과정 없이 각자 가고 싶은 곳을 고르다 보니 방문국이 겹치거나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5년 영국에 간 두 방문단은 똑같이 한ㆍ영 의원친선협회 영국 측 회장을 만나고 런던의 한 대형은행에서 간담회를 했다.

국회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형식과 절차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의원 외교활동 규정은 상임위가 해외시찰을 하려면 방문 지역과 일정 등을 적은 계획서를 전년 11월 30일까지 운영협의회에 제출해 의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멀게는 1년 뒤의 일을 미리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문화된 지 오래다.

한 달에 3개 이상의 의원단이 해외에 가거나, 의원 또는 의원단이 같은 해에 같은 국가를 동일한 목적으로 2회 이상 방문하는 것을 막는 의장의 제한권도 행사된 적이 없다. 방문단의 규모와 기간도 사무처 내부 기준이 4인 이하, 6박8일 이내지만 상임위의 협조공문 하나면 엿가락처럼 늘어난다. 해외에 다녀온 뒤 내야 하는 결과보고서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대한 기밀’로 간주돼 외부에 공개되지 않다 보니 무성의하게 작성되기 일쑤다.

회계보고도 허점 투성이다. 의원외교엔 의원 한 명당 비용이 1000만원이 넘는 경우가 흔하다. 1등석을 기준으로 한 항공료와 특급호텔 기준의 체재비(숙박ㆍ식비), 업무추진비가 지원된다. 이 중 항공권은 출국 전 일괄 구매하고 체재비는 공무원여비규정에 따라 실비 수준의 금액이 지급된다. 문제가 많은 곳은 영수증을 첨부해 사용 내역을 밝히도록 돼 있는 업무추진비다. 통상 3분의 1 이상이 현지공관에 대한 격려금이나 통역ㆍ안내 등을 맡은 대사관 직원 등에게 수고비로 지급되는데 돈을 받았다는 수령증만으로 보고를 끝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한 경우 수령증도 없이 의원이나 수행 직원이 돈을 줬다는 자체확인서를 첨부하기도 한다.

선물 구입비 등 국내에서 사용한 금액의 경우 신용카드나 정식 세금계산서가 아닌 간이영수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상당수다. 정부ㆍ기업 모두 3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할 경우 반드시 정식 세금계산서를 제출하게 돼 있는 관련법에 어긋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특수활동비가 대부분의 해외 출장에 지원된다.

특수활동비는 ‘특수한 업무 수행 및 사건수사 활동’에 한해 영수증 처리 없이 돈을 쓸 수 있도록 한 항목으로 보통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수사기관 등에만 지급된다. 장관의 해외출장 때도 지급되지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국회는 품위유지 격려금 성격으로 연 4억원 이상을 의원 외교활동에 지원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의원은 1000달러, 수행 직원은 500달러가량을 품위유지 격려금으로 주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경실련 경제입법팀 김미영 부장은 “활동 상황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 예산 편성과 지출, 결산이 모두 국회 내에서 이뤄지면서 의원외교가 외유나 휴가로 변질되고 있다”며 “있는 규정이라도 우선 지키고,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감독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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