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야구장은 세계 최대 노래방 겸 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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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의 여지 없는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 팬들이 신문지를 찢어 들고 흔들며 열광적인 응원을 펼치고 있다. 연일 밀려드는 관중 덕분에 주변 상점들도 매출이 급증, 희색을 짓고 있다<사진左>. [사진=김민규 기자]
든 자리보다 빈 자리가 많은 우리 히어로즈의 홈 목동 구장에서는 주민 민원으로 응원조차 숨죽여 하는 형편 이다. 구장 곳곳에는 타악기 사용 자제를 요청하는 안내문까지 걸려 있다<사진右>. [사진=이호형 기자>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이 들썩거린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만년 하위권에서 맴돌던 롯데는 18일 현재 SK 와이번스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야구장에서 달아오른 분위기는 주변 상권에도 영향을 미친다. 롯데의 성적 상승이 이 지역 경기 부양 효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제8구단 우리 히어로즈의 홈 구장이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은 숨을 죽이고 있다. 야구장 소음을 규제해 달라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은 주민 눈치를 보느라 맘껏 응원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떠들썩한 부산 사직동=사직 구장에는 올 시즌 7경기에 16만8442명이 입장했다. 3만 관중석을 모두 채운 것만 세 차례다. 평균 관중 2만4063명이다. 지난 시즌 평균 관중(1만2056명)의 두 배. 사직구장 최다관중 기록(120만9632명·1992년)을 깰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롯데 정수근은 “사직구장은 한국에서 가장 큰 술집”이라고 말했다. 5만1535㎡ 면적의 야구장 전체가 팬들이 술 마시고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라는 이야기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한술 더 떠 “사직구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고 했다. 3만 관중이 한 목소리로 응원가 ‘부산갈매기’를 부르는 장관을 빗댄 말이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로이스터 감독은 “부산 팬들의 응원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멋진 장관”이라고 감탄했다. 롯데가 승리한 날이면 사직 구장 주변은 불야성이 된다. ‘한국 최대 술집’에서 ‘1차’를 즐긴 팬들이 주변 유흥가에서 밤 늦도록 먹고 마시며 뒤풀이를 하기 때문이다.

사직동에서 20년 넘게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숙자(52)씨는 “롯데가 야구를 잘하면 주변에 유동 인구도 많아지면서 경기가 살아난다”며 “노점상은 예년보다 3배 이상 매출이 증가했고, 우리 음식점도 매출이 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숨죽인 서울 목동=올해부터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서울 목동 야구장 주변은 낮에는 조용한 편이다. 유흥가가 없고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은 “응원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야간 조명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목동 구장은 외야석이 없기 때문에 운동장의 응원 소리가 고스란히 아파트 단지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올 시즌 9경기 동안 목동 구장을 찾은 인원은 2만5306명. 경기당 2812명으로 사직 구장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래도 야구장 주변 목5동 아파트 주민들은 “야구장 응원 소음이 수험생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양천구청과 목동 운동장 관리소에는 벌써 수백 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그래서 양천구청은 지난달 서울시에 “방음벽을 설치해 달라”고 두 차례나 요청했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구팬들은 숨죽여 응원을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목동 구장 곳곳에는 ‘타악기 사용을 자제 바랍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목동에 야구장이 들어선 것은 1989년.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은 그 이후라는 게 우리 히어로즈 박노준 단장의 설명이다.

야구장에서 가까운 목6동에 살고 있는 박 단장은 “주민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경기가 열릴 때마다 주변 아파트를 방문해 ‘몇 시간만 참아 달라’고 읍소하러 다니는 실정”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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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식 기자, 사진=김민규·이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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