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품종 한 촉에 3000만원 첨단산업 따로 있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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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18면

경기도 남양주의 실험실에서 강경원씨가 우주선 육종으로 탄생한 변이종 난 묘종을 들여다보고 있다. 신동연 기자

“보름 뒤면 우주에 머물던 내 난초 씨앗이 지구로 돌아올 겁니다. 싹이 트면 ‘소연란’이라고 이름을 붙여줄 겁니다.”

국내 최고의 蘭 육종 전문가 강경원씨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난초 농원을 하는 강경원(43)씨에게 8일은 특별한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를 태운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호가 발사되기 때문이다. 이씨의 우주 임무 중에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강씨의 난초 씨앗을 대상으로 한 돌연변이 실험이 포함돼 있다. 씨앗은 2월 5일 러시아 무인 우주화물선 편으로 먼저 우주정거장에 도착했으며, 19일 이씨와 함께 지구로 귀환한다.

강씨의 난초 씨앗이 우주여행을 떠난 것은 ‘돌연변이 육종(育種)’을 위해서다. 난은 희귀종일수록 비싸게 팔린다. 2년 전 고양 꽃박람회에서 팔린 변이종 풍란 중에는 3억원이 넘는 것도 있었다. 이 때문에 난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품종의 난을 개발하기 위해 애쓴다. 난초 씨앗을 우주에 보내는 것도 그중 하나다.

씨앗이 우주 속에 있는 다양한 방사선에 노출되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서 돌연변이 현상을 일으킨다. 이른바 ‘우주선 육종’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강씨가 2000년부터 원자력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돌연변이 난 신품종 육성’이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강씨의 우주선 육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남양주의 강씨 농원에는 2006년 이미 한 차례 중국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다녀온 난초 ‘진도석곡’의 씨앗이 3㎝ 길이로 자라 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진도석곡의 잎에는 범상치 않은 노란 줄무늬가 뚜렷했다. 강씨는 “내년 봄쯤이면 국내 최초로 우주선 육종으로 탄생한 국내 유일의 진도석곡 변이종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스스로를 ‘농부’라 부른다. 농원 이름도 ‘바보농원’이라 지었다. ‘난’이라는 외길만 가겠다는 강씨의 고집이 스며 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난초 육종 전문가다. 지금까지 신품종 난을 개발해 특허 등록한 것만 10종에 이른다. 국산 신품종 난 25종 중 40%가 강씨 작품인 셈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풍란을 국내 최초로 대량 번식하는 데 성공한 사람도 강씨다.

원자력연구소와의 프로젝트 외에도 환경부와 풍란 복원 사업, 농촌진흥청과 난 육종 사업을 해왔다. 농림부의 과학정책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건국대에서 난 육종 전공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긴 세월 외길에 미치니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강씨는 난초 농사로 한 해 1억원 이상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비닐하우스 실험실에서 난초 씨앗의 싹을 틔워 시중에 내다 파는 게 주 소득원이지만 신품종 개발로 기대되는 수익은 그 이상이다. 강씨의 신품종 난 중에는 촉당 3000만원에 팔린 것도 있다.

그동안 강씨가 키워낸 난이 100만 주에 이른다. 특히 자신이 직접 종자를 개량해 키운 난은 전국 어디에 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시중 꽃집에서 만난 난이 마치 ‘아빠 나야!’라고 부르는 듯하다”고 말했다.

지금에서야 ‘박사님’ 소리를 듣는 그도 시작은 그렇지 못했다. 광주광역시의 농고를 거쳐 천안의 연암축산원예전문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86년부터 농업진흥청 산하 원예시험장과 천안의 모교에서 조교 생활을 하며 난과 인연을 쌓았다. 그때 배운 기술로 91년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난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난 번식은 뿌리 나누기나 생장점을 채취해 심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난 번식은 대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강씨는 “전문대 출신이 먼지보다 작은 난초 씨앗을 배양해 난초를 대량으로 키워낸다고 하니 주위에서 다들 비웃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난 씨앗이 어느 정도 자란 1년 뒤 주위의 평가는 180도 변했다. 그는 “조직 배양으로 키운 난 묘종을 사가려는 사람이 비닐하우스 밖에 줄을 섰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후로 국내 난 번식 방법이 조직 배양으로 돌아섰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소리다.

난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이룬 강씨지만 그에겐 아직도 피어나고 있는 꿈이 있다. 난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이다. 강씨는 “농업이 사양산업이라고들 하지만 신품종 개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부가가치산업·첨단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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