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무중력 공간에 던져진 난초 씨앗에 우주방사선이 쏟아진다. 길이 3㎝의 시험관에 든 2만여 개의 씨앗이 몸부림친다. 곧이어 씨앗의 유전자 구조는 방사선에 뒤틀린다. 돌연변이,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국내 첫 우주인 이소연씨
우주 육종의 원리다. 8일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를 타고 지구를 떠나는 국내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29)씨가 해야 할 실험 중 하나가 바로 우주 육종이다.
지구에서 354㎞ 떨어진 상공의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우리 토종 난인 진도석곡·풍란의 씨앗이 소연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씨앗은 그의 출발에 앞서 2월 5일 실험 기자재와 함께 무인 화물우주선 편으로 우주정거장에 올라갔다. 2만 개의 씨앗 가운데 몇 개라도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면, 그리고 잘 자라 화려한 줄무늬를 보여준다면 난초의 이름은 ‘소연란’이 된다. 씨앗 주인이자 육종학자인 강경원(43) 박사가 그렇게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난초 씨앗이 험난한 우주여행을 하는 이유는 ‘귀해지기’ 위해서다. 우주방사선을 이용해 돌연변이를 일으켜 세상에 없는 난을 만들려는 시도다.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난초도 희귀할수록 비싸다. 국내에서 한 촉에 3억원에 팔린 것도 있다. 강씨는 “육종에 성공한다면 소연란은 값을 매기기 어려운 희귀 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방사선에 노출한다고 모두 ‘귀하신 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연란이 나오기까지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몇 개가 살아남을지, 생존한다 해도 모양이 어떨지 내다보기 힘들다.
19일 이씨와 함께 지구로 귀환하는 난초 씨앗은 실험실로 옮겨져 무균 플라스크 병 속에서 싹을 틔우게 된다. 난의 성장은 다른 어떤 식물보다 더디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2㎝ 이상 자라기까지 1년 이상 걸린다.
그때쯤이면 소연란의 성패가 가려질 것이다. 멋진 돌연변이가 탄생했는지 육안으로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번 우주 육종 실험에는 난초 외에도 민들레와 코스모스ㆍ무궁화ㆍ벼ㆍ콩 등 모두 11종의 씨앗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