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 야구’이유 있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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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야구는 3시간 내외가 적당하다. 4시간 이상 걸리면 지루하다.”

야구 매니어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지난달 30일 교통방송의 잠실 개막전 중계를 하며 한 말이다. 정 전 총장의 지적처럼 국내 프로야구 경기는 4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경기의 스피드 업(빠른 진행)’ 규정을 명시해 놓고 있지만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LG전에서 공수 교대와 투수 교체 시간을 초시계로 재 봤다. 투수 교체가 별로 없어 이날 경기는 3시간1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공수 교대와 투수 교체에 전체 경기시간의 약 3분의 1인 48분46초나 소요됐다. ‘스피드업’ 규정을 지켰다면 2시간50분 내외에 끝날 수도 있었다.

◇공수 교대에 평균 2분30초=KBO 규정엔 ‘전 이닝의 마지막 아웃이 되는 시점부터 다음 이닝 첫 번째 공이 투구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대 2분으로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날 삼성-LG의 공수 교대는 평균 2분30초 정도 걸렸다. 1회 말 삼성 공격이 끝나고 2회 초 LG 투수 브라운이 공을 뿌릴 때까지 걸린 시간이 1분53초. 이날 유일하게 2분 안에 공수가 교대된 이닝이었다. 나머지 공수 교대는 모두 2분을 훌쩍 넘겼다. 타자는 스윙 연습을 하느라 선뜻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 모습이 여전했다.

◇투수 교체 및 연습 투구 수=양팀 9명의 투수가 등판한 이날 이닝 도중 투수 교체는 두 번 있었다. 6회 말 LG 공격 중 삼성 권오준이 올라왔고(2분28초), 7회 초 삼성 공격 중 LG 이범준이 나왔다(2분53초). 천천히 걸어 나온 권오준은 6개의 연습구, 이범준도 비슷한 수의 연습구를 던진 후 공격이 재개됐다. 그러나 이 역시 ‘스피드 업’ 규정에 위배됐다. 규정에 따르면 ‘전 회에 이어 등판한 투수의 준비 투구는 3구, 그 밖의 경우는 5구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양팀 13명의 투수가 등판한 1일 경기는 3시간55분, 2일 경기는 3시간58분이나 걸렸다.

◇일본보다 이닝당 1분 더 걸려=3일 요미우리-주니치 경기가 열린 도쿄돔 전광판에는 빠른 공수 교대를 독려하는 초시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아웃이 되면 카운트가 시작돼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멈춘다. 보통 2분 이내에 공수 교대가 이뤄졌고 평균 1분40초~1분50초였다.

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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