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5.18 不起訴는 잘못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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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前대통령을 비롯한 「5.18 광주민주화운동」관련 피고소.고발인에 대한 검찰의「공소권 없음」결정은 그 무자비한 유혈진압의 상처크기에 비추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는 적절치 못한 결정이라고 본다.지난해 「12.12」관련자에 대한 기소유예처분도 잘못된 것으로 비판을 받았는데,이번에는 한걸음 더 후퇴한 「공소권 없음」이라니 실망스럽기 짝이없다.논리의 일관성이나 국가.정치의 안정성을 고려한다면 최소한「12.12」와 같이 기소유예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비상계엄확대→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국보위 설치→최규하(崔圭夏)前대통령 하야→전두환 前대통령 취임등은 일련의 통치행위로 유.
무죄를 따지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게 검찰의 「공소권 없음」결정의 이유다.검찰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일 련의 조치들은 정권창출의 준비 또는 기초행위」라고 정의해 놓고도 가장 핵심인 결론은 회피해 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누구를 위해서 이같은 수사를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일부 관련자들은 이같은 결정을 기다려 정치활동을 재개하려 한다니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사였다는 말인가. 물론 사건 당시의 관련자료 확보가 어렵고,관계자들의 증언기피등으로 15년전 사건을 재구성해 수사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는 주임검사의 말도 이해는 할 수 있다.또 이미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12.12는 쿠데타적 사건」이 라고 정치적인 정의를 내렸기 때문에 「5.18」의 처리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리란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번 검찰의 결정은 여러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우선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최규하(崔圭夏)前대통령의 증언을 받아내지 못한데 따른 수사미진 부분이다.검찰이 증언청취를 위해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묻고 싶다.참고인이기 때문에 서로 예의를 갖추고 명분을 찾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만 것이 아닌가.검찰은 특정집단의 형사처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혀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崔 前대통령■ 증언확보에 보다 적극적으로나섰어야 했다.
또 수사미진상태의 사건을 불기소처분한 것은 법원이 판단하는 길을 막았다는 점에서 기소편의주의의 남용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증언을 못받았으면 못받았을수록,자료가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서라도 공소를 제기해 법원의 검증과정을 한번 더 거치는 것이 온당하다.법원의 순수한 법률판단을 거친뒤정치적인 고려가 필요하면 사면.복권등 대통령의 은사권을 활용해마무리하는 것이 훨씬 당당하고 모양새 있는 처리방법일 것이다.
이밖에 검찰이 법리(法理)로 내세운 통치행위이론도 생각해볼 점이 많다.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통치행위이론은 우리나라에서 유신때 일부학자들에 의해주로 원용되던 이론이다.대통령의 행위도 헌법과 법률에 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통치행위이론의 적용은 전쟁선포나 고도의 외교적인결정등으로 극히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 현대법이론의 대세다.이제와서 헌법적 차원의 통치행위이론을 형법적용에 도입한 것은 궁색할 뿐만 아니라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짜맞추기 수사였다는 억측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변칙적인 집권과정을 거쳐 全대통령등이 이 나라를 통치한 것은지울 수도,되돌릴 수도 없는 불행한 역사다.다시는 되풀이돼서는안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국민 모두가 절감하고 있다.그렇지만 「정치변혁에 성공했으므로」,다시말해 성공한 쿠데 타이므로 「가벌성(可罰性)이 없다」는게 검찰의 법이론이다.우리도 지금와서 이미 현실이 돼있는 역사를 무시하고 이들을 굳이 처벌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다만 사건이 사건인 만큼 사건의 처리과정이 역사의식에 입각해 보다 냉엄하고 당 당할 필요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옳고 그르고,죄가 있고 없고를 명백히 가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는 것이 이 시대 검찰이 지닌 최소한의 임무가 아닌가.검찰이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해 광주의 상처가 오히려 더 헤집 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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