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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4·9 총선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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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다수 유권자와 마찬가지로 요즘 필자의 관심 역시 다음 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 쏠려 있다. 다음은 정치학을 전공하는 필자의 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간추린 것이다.

학생 1: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참여하는 정당의 숫자가 많고, 지역구마다 후보들이 난립한다고 할 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입후보하는 현상인 듯합니다. 강의 시간에 배운 선거이론에 따르면, 우리처럼 소선거구제를 하는 나라에서는 후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양당제가 흔히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번처럼 대다수 지역구에서 여야·무소속 후보가 다자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필자: 무엇보다 이번 선거가 민주화 2기로 넘어가는 길목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20년간 정치를 주도했던 ‘민주화의 명분’이 퇴색하면서, 민주화 세력이 대거 물러났고,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새로운 정치주역이 등장하는 신호탄이었겠지. 따라서 이번 총선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후반전 경기라고 봐야겠지. 이런 세력 교체 과정에서는 자연히 기성 정당들과 새로운 정당들에다 무소속 후보들까지 가세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네.

학생 2: 선거 과정을 주도하는 주역은 당연히 정당이어야 하고, 실제로 정당이 얼마나 중심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서 민주주의의 질이 좌우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이나 선거운동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 정당들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필자: 민심이 납득하기 어려운 하향식 공천이 적지 않게 이뤄졌던 한나라당·통합민주당의 공천 과정과 뒤이은 잡음 때문에 그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보네. 그런데 우리는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肩?흐름을 바라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나는 우리 정당들이 최근에 유동성이 아주 높아진 ‘유목형(遊牧型) 조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판단일세. 제왕적 총재가 물러가고 또한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적인 정체성보다 여론의 지지가 중요해지면서 나타나는 흐름이라고나 할까? 한나라당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제 정당의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지 않은가? 공천 탈락자들이 무소속 간판으로 나서지만 실제로는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통해 당선되고 마침내는 한나라당으로 복귀하는 당선자들이 나오겠지. 다시 말해 선거 승리와 여론의 지지라는 가변적 요소들이 정당 조직의 안정성보다 중요해진 것이지.

학생 1: 정당이 그처럼 유목형 조직으로 변화한다는 말씀은 총선 이후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 여당과 야당의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필자: 자네의 지적에 공감하네. 여러 조사기관의 예측대로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게 되더라도, 대통령-여당의 관계가 과거처럼 일사불란한 협력체제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보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 경험했던 바와 같이, 제왕적 총재가 물러가고 의원들의 자율성이 늘어나면서 대통령-여당 관계는 미국의 경우처럼 끝없이 서로 타협하고 조정해야 하는 ‘협상의 관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지. 결국 한나라당의 의석 규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새로운 협상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가의 문제일 걸세.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리더십과 새 정부의 활력이 여기에 달려 있네.

학생 2: 끝으로 유권자, 특히 젊은 층의 투표 참여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요. 사실 저희 또래들은 이번에도 투표에 그다지 많이 참여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투표참여율이 낮다고 해서 저희 또래들이 정치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들은 정치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정당정치나 선거보다는, 저희들끼리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는 인터넷 토론이 더 편하다고 느낄 따름입니다.

필자: 물론 자네들 젊은 세대가 투표가 아닌 다른 방식의 정치 참여에 더 끌린다는 점은 인정하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네들 젊은 세대가 이번 선거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믿네. 자네들이 얼마나 투표에 참여하는가의 여부, 그리고 젊은 세대가 주목하는 후보들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수도권의 당선자가 결정되겠지. 궁극적으로 이것이 전체 선거 결과를 좌우하게 되지 않을까? 어쨌든 다음 주에 투표장에서 많은 젊은 유권자를 만나기를 기대해 보겠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