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작곡가 황문평씨 별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작곡가 황문평(黃文平.본명 海昌)씨가 13일 오전 별세했다. 85세.

유족은 "지병인 심장 질환이 악화해 수년 전 외부 활동을 중단한 고인께서 큰 고통없이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1920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43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서 성악과 작곡 등을 공부한 뒤 귀국했다. 48년 영화 '푸른 언덕'의 주제가와 영화 '원술랑'의 삽입곡을 만들며 작곡 활동을 시작해 영화.악극.드라마 음악 8백여곡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드라마 주제곡 '꽃중의 꽃'(61년)과 영화 주제가 '빨간 마후라'(64년)는 '국민 애창곡'이 됐다.

고인은 음악 평론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한국무대예술원 음악위원장을 맡아(48년) 좋은 노래를 고르고 알리는 일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HLKZ-TV(KBS의 전신) 편성과장.음악과장(56년), KBS-TV 개국위원(62년), 공연윤리위원회 위원(75년) 등을 지냈다.

70.80년대 방송사 주최의 노래 대회에는 단골 심사위원으로 등장했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황선생님은 한국에 음악 평론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중음악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과 막힘없는 언변으로도 유명했다.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해 연도와 인명을 정확히 기억하며 속사포처럼 대중 음악의 역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지인들은 고인을 '걸어다니는 연예 사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가요계 뒷얘기들을 담은 '노래따라 세월따라'와 한국 대중음악사를 정리한 '노래 백년사''가요60년사''한국대중연예사'등의 책을 썼다.

고인은 생전에 "나는 대중가요를 한 곡도 만들지 않았다. 내 노래는 일본의 음악인 '가요'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대중음악계의 아웃사이더였다"고 말했다. 그가 작곡한 '빨간 마후라'의 노래말을 지은 극작가 한운사씨는 "그에게는 고전음악적 요소와 대중음악의 특색이 어우러진 낭만적 멜로디를 만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영화와 음악에 기여한 공로로 화관문화훈장을 비롯해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상.대종상.연극영화예술상.아세아영화제 음악상.문화예술상.KBS가요대상 특별공로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장녀 인아(60)씨와 인규(58).원규(56)씨 등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3410-6902)이며, 발인은 17일 오전 8시.

이상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