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승은/성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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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사극은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요즘도 세종대왕·정조대왕·연산군 등을 다룬 사극이 방영 중이다. 사극을 보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가 “성은/승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승은을 입어 왕자를 생산해 숙의에 책봉되었다”와 같은 말들이다.

이처럼 ‘성은’과 ‘승은’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종종 그 뜻을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어떨 때 ‘성은’을 쓰고, ‘승은’이라고 써야 할 때는 언제일까.

‘성은(聖恩)’은 ‘임금의 큰 은혜’를 의미한다. 드라마 속에서 신하들이 줄줄이 앉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에 감읍하옵니다”와 같은 대사를 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승은(承恩)’은 신하가 임금에게서 특별한 은혜를 받는 것을 뜻하기도 하나 주로 ‘여자가 임금의 총애를 받아 임금을 밤에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성은’이 임금의 은혜를 뜻하는 말이니, “성은을 입어 왕자를 생산했다”는 표현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유적 표현이 아닌 좀 더 적확한 단어가 ‘승은’이므로 “승은을 입어 왕자를 생산했다”와 같이 쓰는 것이 구체적이고 정확하다 할 수 있다.

오로지 임금의 승은만을 기다리며 살았을지 모를 궁녀들의 삶은 외롭고 고단했을까, 아니면 배곯을 걱정, 자식 걱정, 남편 걱정 안 해 오히려 속 편하고 여유로웠을까. 아내가 후자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남편은 좀 더 분발할 것!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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