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 美·日 "예상치 못한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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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미우리.아사히 등 일본의 주요 신문들이 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사를 일제히 1면 톱기사로 올렸다. [도쿄=연합]

미국.중국.일본 등 각국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처리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한국 국내 문제란 점을 들어 즉각적인 논평이나 언급은 자제했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주한 대사관을 통해 사태의 추이를 보고받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코멘트는 유보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긴급 군사.안보 상황이 아닌 국내 정치 사안이어서 공식 성명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 "한국과는 시차가 있어 12일 낮 (한국시간 13일 오전) 백악관과 국무부 정례 언론 브리핑에서 언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에선 설마 탄핵안이 통과되리라곤 예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탄핵안 가결 직후 기자들의 논평 요구에 "외국의 국내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다만 "북한에 대한 한국의 대처 방식은 아마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는 한국의 내정 문제"라며 "우방인 한국이 정국 안정을 되찾기 바란다"고 짤막하게 논평했다.

이날 탄핵안 가결 소식은 해외에서도 충격적인 뉴스로 다뤄졌다. 로이터.AP 등 주요 외신들은 박관용 의장의 가결 선포를 긴급 뉴스로 타전했고 CNN은 서울 특파원의 리포트와 함께 이를 생중계했다. CNN은 표결 직전 의원들의 격렬한 몸싸움을 여과없이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주니어는 이날 '바보들아, 중요한 것은 빚과 경제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이 국제적인 이미지를 다듬어야 할 때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것은 이상한 광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사용했던 '바보들아, 중요한 것은 경제야'라는 구호를 인용한 이 칼럼에서 "한국은 회의적인 바깥 세상에 '한국 경제는 무시당할 수 없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 경제가 정치적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1987년 한국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래 한국인 내부 분열이 어느 때보다 심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등 일본 신문들은 석간과 인터넷판 톱기사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됨에 따라 외교.안보 보장 등 중대한 정책결정에 지장이 우려된다"며 "한국의 국가신용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의 경제전문 일간지인 파이낸셜 타임스는 논평가들의 말을 인용해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한국의) 국내 정치불안이 북한 핵 위기보다 더 심각한 불확실성의 원천이 됐다"고 전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도 신용등급평가기관인 피치 레이팅스의 아시아 담당자인 브라이언 쿨튼의 말을 인용해 "이것이 채무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범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아라비야 등을 통해 소식을 들은 이라크 국민도 주로 파병 문제와 연관시켜 관심을 표명했다. 전직 언론인 아사드 무라드(50)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 탄핵 절차가 시작돼 파병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워싱턴.베이징.도쿄=김종혁.유광종.김현기 특파원, 서울=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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