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직도 배회하는 돈선거 유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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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총선 후보등록 전날 충격적인 돈선거 사건이 터졌다. 강원도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구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후보가 선거운동 조직책에게 4000여만원을 건넨 것이다. 돈다발이 여러 액수로 다양하게 묶여 있어 이는 여러 단계의 조직책들에게 살포하기 위한 것으로 선관위는 보고 있다. 이 후보는 공천을 받자마자 돈다발부터 준비했던 것 같다. 이 지역은 산 높고 물 맑기로 유명한 청정지역이다. 검은돈이 그곳을 더럽힐 뻔했다니 아찔하고 개탄스럽다.

그동안 여러 가지 개혁 노력으로 고질적인 돈선거는 많이 사라졌다. 지난 대선이 특히 그러하다. 5년 전엔 끔찍한 ‘차떼기’가 있었으나 이번엔 아직까지 드러난 돈 스캔들은 없다. 이는 법·제도의 정비, 선관위의 단속, 정치세력과 유권자의 각성이 어우러진 결과다. 그러나 추악한 돈선거의 유령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선거판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경북 청도에선 군수 재선거에서 당선된 후보 측이 유권자 5700여 명에게 금품을 뿌렸다. 수사가 벌어지자 선거운동원 2명이 음독자살했고 40여 명이 구속됐다. 유령이 마을을 흉가로 만든 것이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후보는 과거 국회에 대한 돈 로비사건으로 사법처리됐던 인물이다. 당적은 원래 한나라당이었다가 김대중 정권에서 민주당으로 갔고 이후 열린우리당으로 옮겼다. 그래서 대표적인 ‘철새 공천’으로 꼽혔다. 이런 인물을 공천하고도 당 지도부와 공천심사위가 개혁공천 운운하니 민심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이번 총선엔 여러 정파에서 수많은 인물이 출마한다. 총선을 위협하는 것은 돈선거 유령만이 아니다. 선거판이 독하게 달아 있으니 흑색선전, 선거폭력, 공무원의 선거개입도 위험한 요소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무원의 중립과 중상모략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주문했다. 법원도 선거법 위반 당선자에 대해선 심리를 서두르기로 했다. 선거라는 코끼리를 다루는 데는 이중·삼중의 튼튼한 울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