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시시각각

“미국 쇠고기 맛이 어떠신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새 정부와 집권 여당이 벌써부터 허우적거리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공천이 불러온 잡음과 여권 내에서 불거진 때이른 권력투쟁에 국민은 넌더리를 낸다. 새 정부는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 갈팡질팡이다. 관료들은 대통령 입에서 나온 한마디를 새기느라 머리를 싸매고, 대통령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냅다 뛰느라 눈썹이 휘날린다. ‘성장’을 향해 앞뒤 보지 않고 내달리다, 대통령이 ‘안정’을 얘기하자 급브레이크를 밟느라 먼지가 뿌옇다. 몸은 부산하게 움직이는데 머리가 따르지 않는 모습이다.

다음달 총선 때까지 이런 혼란상이 쉬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불안하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가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총선에서 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무산될까 걱정해서가 아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인 걸 어쩌겠는가. 민심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종잡을 수 없지만 한번 돌아서면 겨울 찬 서리처럼 모질다. 가벼운 민심을 탓할 일이 아니다. 다만 애써 뽑아준 국민의 정성이 아깝고, 10년을 기다려온 기대가 꺾일까 걱정일 뿐이다.

지금은 모두가 총선밖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은 총선 후가 더 걱정이다. 총선 이후에도 나라는 어떻게든 굴러가야 할 게 아닌가. 대통령과 정부는 눈앞의 총선을 넘어 그 다음 할 일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당장 급한 것은 4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 대통령에게 총선 이후 곧바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국면 전환의 호기다. 여기서 성과를 거두면 풀리지 않는 정치적 부담을 털고 답답한 경제에 활로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자면 이번 정상회담이 의례적인 인사치레에 그쳐서는 안 된다. 4강외교의 첫 타석부터 손에 잡히는 실적을 올려야 한다. 이 대통령이 미국에서 들고 올 가장 확실한 성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한 미국 정부와 의회의 약속이 될 것이다.

나는 본디 미래를 점치는 데 젬병이지만 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초대되는 미국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의 만찬 메뉴로 뭐가 나올지는 대략 짐작이 간다. 미국산 특A급 쇠고기 스테이크에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나올 게 분명하다고. 그리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물을 것이다. “미국 쇠고기 맛이 어떠신지?” 얼핏 쉬운 질문 같지만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해 가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것인지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고서는 한·미 FTA 비준은 말도 꺼내지 말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기대되는 최대 성과는 한·미 FTA인데 그걸 얻자면 쇠고기 수입을 약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흡사 미국이 FTA 비준에 매달리는 한국의 약점을 잡아 쇠고기 시장 개방을 윽박지르는 모양새라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국내 쇠고기 시장은 진작에 개방됐다. 다만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는 바람에 수입이 중단됐을 뿐이다. 시장 개방 여부가 아니라 안전성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은 이미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인정을 받았다. 안전성을 이유로 수입을 막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사실 쇠고기를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양국의 국내정치 문제다. 솔직히 미국이 쇠고기 수출에 목을 매는 이유는 미국 목축업자들의 압력 때문이고, 한국이 수입 재개를 미루는 것은 한국 축산업자들의 반대 때문 아닌가. 위생 조건이나 안전성 문제로 다툴 일이 아닌 것이다.

이 대통령이 방미 카드로 쇠고기 수입에 대한 답을 들고 가는 것은 꽃놀이패나 다름없다. 이미 개방된 시장을 생색내며 다시 열어주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국내 축산업자들을 설득하는 일은 여전히 이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