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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나들이] 서울 신사동 '가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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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놓인 그릇과 수저만 봐도 음식점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그릇이나 수저가 단순히 음식을 담고 먹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릇은 음식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맛을 보여주고, 수저는 미각적인 맛을 전달한다. 음식과 동격인 셈이다. 그래서 고급 음식점에선 음식의 맛만 따지지 않는다. 그릇이나 수저도 확인한다. 정직한 식재로 올바르게 조리했는지를 음식과 동격인 그릇과 수저를 통해 눈치 채는 것이다.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옆에 있는 한식 레스토랑 '가온'은 '입으론 밥을, 눈으론 그릇을 먹는 곳'이다. 한 식탁에 앉은 네 명의 물 잔이 하나하나 다르고, 음식이 담겨 나오는 그릇도 매번 다르다. 주문한 음식이 어떤 맛일까 하는 기대감보다 어떤 그릇에 담겨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더 발동할 정도다.

메뉴는 코스식 한식과 일품 요리로 나뉜다. 코스 요리는 점심엔 2만9000원짜리부터, 저녁엔 7만5000원짜리부터 있다. 일품 요리는 고등어조림.전복갈비찜.새우강정.녹두전.김치전 등 폭넓은 가격대의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

2만9000원짜리 점심은 야채무침이 시작이다. 실파.쑥갓.상추.미나리 등 신선한 각종 야채와 두부를 이용한 유자소스로 무친 것이다. 난을 친 넓은 백색 자기에 맛깔스럽게 담겨 나온다. 유자향이 은은한 가운데 매콤하며 달콤하다. 다음은 녹두전. 평평한 흰색 그릇에 반달 모양으로 앙증맞게 올라 있다. 찹쌀가루가 들어가 약간 차진 느낌이다.

이어지는 돼지고기 고추장 불고기는 뚜껑이 있는 질펀한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온다. 함께 나온 대파와 통마늘 구이가 단맛을 낸다. 국물이 걸쭉한 질그릇 된장찌개와 내열자기 솥밥으로 식사를 마치면 금속 쟁반에 작은 떡 몇 개가 올라간 후식이 나온다. 음료로 따뜻한 숭늉이 곁들여진다.

일품요리로는 고등어조림(5만5000원)이 인기다. 살아있는 고등어로 조리해 간이 밴 무에서도 살 맛이 난다. 가온에서는 모든 음식에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소금도 최소한으로 절제하고 대신 직접 담은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고 한다. 그래선지 음식이 전반적으로 깊고 은은한 맛이다.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인데 층별로 독특한 분위기다. 지하는 검은 칠을 한 목재, 1.2층은 유리.돌.나무 등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2층 계단의 색동옷 유리, 신문지로 만들어 세운 기둥, 곡식으로 채운 벽 등은 또 다른 한식 문화를 보여준다.

'좋은 재료로 제대로 만들어 외국인에게도 한식의 참맛을 보여 주겠다'는 가온 측의 야심은 좋았으나 모든 자리가 서양식 테이블이란 점이 무척 아쉽다. 좋은 그릇을 사용한 값을 치른다고 생각하면 높은 가격도 받아들일 만하다.

유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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