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방과 후 학교’에 공교육 희망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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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 강남교육청이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실험에 나섰다. 방과 후에 학생들이 학원에 가지 않고 인근 거점 학교에 개설된 국어·영어·수학 강좌를 싼값에 수강하도록 하는 ‘방과 후 거점 학교’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강남이 어디인가. 사교육 1번지로 통하는 곳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강남교육청의 시도는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5곳으로 시작한 거점 학교는 이번 학기부터 9곳으로 확대됐다. 학생·학부모 평가가 좋다는 판단에서다. 만족도 조사 결과 학생·학부모 60%가 ‘만족’, 35%가 ‘보통’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우선 맞춤형 수업이란 점에서 인기다. 기초·내신·심화반으로 나눠 수준별 수업을 한다. 1대1 교육이 가능하도록 강좌당 정원을 15명으로 제한했다. 학생이 원해서 듣는 수업이니 집중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 절감 효과도 크다. 일반 학원 수강료의 6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학교의 학원화’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교사들이 돈을 받고 방과 후에 교과목 수업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교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방안의 하나로 시도해 볼 만한 실험이라고 본다. 엄연한 사교육 수요를 모른 척하기보다는 공교육이 학교 안에서 해결해 주는 방도를 찾는 게 맞다.

방과 후 거점 학교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돼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4월부터 다른 10개 지역 교육청에서도 방과 후 거점 학교를 1개씩 만들기로 한 것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부산시교육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올해 중학교 18곳을 ‘인근 학교 연계 방과 후 거점 학교’로 운영하고 38개 초등학교에 ‘거점 초등학교 영어체험센터’를 만든다고 한다.

사교육 문제는 학원을 규제한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 공교육이 달라지는 게 먼저다.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 이어 궁극적으로 정규 교육과정의 질을 끌어올리는 게 근본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