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이 빼냈나, 출제교사가 베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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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전 유출이냐?” “베끼기냐?”

12일 전국 고교생이 치른 연합학력평가의 고3 수리영역 문제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주관으로 출제된 일부 시험 문항이 서울 대치동 S학원 강사가 학력평가를 앞두고 배포한 자료집 문항과 거의 똑같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제 유출 의혹= 문제가 된 것은 고3 수리영역 45문항 중 19개 문항이다. 지난달 말 S학원 강사 윤모씨가 학생들에게 ‘연합학력평가 실전 대비 자료집(100문제)’이라며 배포한 것과 거의 유사했다. 시교육청은 출제된 19개 문항 중 ▶ 5문제는 이 자료집과 조사나 영어 알파벳만 다르고 ▶14문제는 도형을 약간 변형시킨 정도로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교육청이 출제한 문제가 학원으로 유출됐거나 ▶교사가 문제를 출제할 때 학원 강사가 만든 자료집을 베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학력평가 문제는 1월 말 완성됐으며, 학원 문제집은 2월에 배포됐다. 따라서 문제가 유출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학원 강사가 자료집을 만든 시점이 불분명하다. 자료집이 1월 말 이전에 만들어지고 출제 교사가 문제를 베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강사, “출제위원들이 베꼈다”=서울시교육청은 문제가 유사하다는 판단에 따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S학원 강사 윤씨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16일 문제집을 배포한 학원 강사를 소환해 경위를 집중 조사했다.

윤씨는 경찰 조사에서 “문제 출제위원들이 내가 오래전 만들었던 문제집을 베껴 출제했다. 출제위원들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9명의 수리영역 출제 교사들은 이번 사건과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다. 제보자에 따르면 윤씨는 수리 출제위원과의 친분을 학생들 앞에서 과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연합학력평가는 내신이나 대입전형에 사용되는 시험은 아니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1년에 네 차례 치르는 모의고사다. 이번 시험은 서울시교육청이 문제를 출제하고 시·도교육청이 문제지를 인쇄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윤씨가 과거 만들었다는 문제집을 검토하고 출제 교사와의 친분관계를 조사할 계획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지난해 김포외고 시험지 유출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문제가 생겼다”며 “교육당국의 관리·감독 시스템의 부실이 드러나면 관련자 전원을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일현·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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