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조절 자유자재…'카멜레온 유리'빛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4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 낮에는 이 햇볕을 막아주고, 밤에는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자동 유리창이 사무실에 있다면 블라인드나 커튼이 필요없을 것이다.

버튼만 누르면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파란색에서 검은색 선탠 상태로 변하는 '똑똑한 유리창'이 미국.독일 등에서 실용화되고 있다.

독일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연구소(ISE)가 개발한 '가스변색 유리창'은 대형 유리와 그에 연결된 구두상자 크기의 기계로 구성된다. 이 창문은 원할 때 버튼을 누르면 어두워진다.

버튼만 누르면 몇초 후 유리창이 파란색으로 변하고, 기존 햇빛의 25%만 통과시키는 것. 비결은 이중 유리의 내부에 넣은 얇고 투명한 텅스텐산화물 층이다.

구두상자만 한 기계는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해 아주 약간의 수소를 유리창에 살포시 퍼뜨린다.

이렇게 하면 텅스텐산화물이 특정 빛의 파장을 막아 유리창이 파란색으로 변한다. 다시 버튼을 누르면 물에서 만들어진 산소가 유리창에 고루 퍼져 원래의 투명한 색깔로 돌아간다.

프라운호퍼 ISE의 안드레아스 게오르그 박사는 "버튼 조작에 따라 색의 강도와 태양 차단 정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가스는 사용 후 다시 물로 돌아오며, 유리창과 연결장치의 수명은 20년 정도다. 쓰이는 가스 양이 극히 적고, 텅스텐산화물도 인체에 해가 없어 유리가 깨지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세계적인 건축자재 회사인 인터페인에서 이미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호화 관광버스 등에 요긴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블라인드나 커튼으로 바깥 경치를 방해하지 않고도 뜨거운 태양빛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일반 사무실이나 주택에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버튼을 누르지 않더라도 빛의 강도에 따라 자동적으로 변하는 '빛변색' 유리도 있다.

하지만 한겨울 추운 날씨에도 한낮에 햇볕만 비치면 자동으로 빛을 차단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정 온도보다 올라가면 색깔이 변하는 '열변색' 유리창이다.

독일 프라운호퍼 건축물리연구소(IBP)가 개발, 'T-오팔'로 불리는 열변색 유리창은 특허 고분자 물질을 얇은 이중 유리판 사이에 함유하고 있다. 고분자 물질은 평소에는 액체상태로 있다가 정해진 온도까지 올라가면 딱딱한 고체 상태로 변해 유리 색깔을 어둡게 바꾼다. 밤새 온도가 5~10도 내려가면 고분자 물질이 다시 액체 상태로 돌아가 유리색깔을 밝게 한다.

상용화가 상당히 진척된 '전기변색' 유리판은 버튼을 누르면 전기에 의해 색이 변해 반사나 햇볕 투과를 막는 똑똑한 유리창이다. 하지만 넓은 면적의 유리에는 사용할 수 없어 최고급 자동차의 백미러나 선루프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리서치 프론티어사가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변색 유리판도 있다. 평소에는 유리판 사이에 수많은 초미세 입자(SPD)가 불규칙적으로 뭉쳐있어 빛의 통과를 막는다. 그러다가 전기를 연결시키면 일렬로 규칙적으로 늘어서며 빛을 통과시킨다.15개 정도의 유리판을 작동시키는 데 드는 전기가 조그만 램프 하나에 필요한 전력과 비슷하다고 한다.

차 업체인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최고급 차종의 선루프에, 개인용 제트기 제작업체인 에어로서비스사가 제트기 유리창에 올해부터 장착하는 등 18개 업체가 상용화할 계획이다.

에너지도 절약하고 전망을 방해받지 않으면서 더 쾌적한 환경을 누리려는 요구 때문에 더 싸고 더 편한 똑똑한 유리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