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이 말하는 ‘인간 예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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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25면

서양 문명의 양대 기둥으로 흔히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을 꼽는다. 헬레니즘이 그리스 철학이라면 헤브라이즘은 기독교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기독교도의 활동이 왕성한 나라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금기시돼 온 대목이 있다.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다. 신앙으로서의 기독교 외에 역사·문화·철학으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 우리나라 보수 기독교계의 경우 초월적 신(神)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구체적 인물로서의 예수에 대한 연구는 신앙을 저해하는 불온한 움직임으로 간주되곤 했다.

반면 유럽의 경우 이미 100년 전부터 기독교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했다. 성서 관련 고증학·고고학·고문헌 연구 등과 같은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2000년 전 예수가 실제로 어떻게 태어나 어떤 활동을 했는지, 당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등등.

그 결과 얻어진 대표적 성과가 ‘Q복음서(Q문서)’다. Q는 4대 복음서 이전에 만들어진,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문서다. 그 가상의 문서를 ‘크벨레(Quelle·원천이란 뜻의 독일어)’의 첫머리를 따 ‘Q’라 이름 붙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를 경우 Q는 마태와 마가 등 복음서 저자들이 참고했던 오리지널 예수의 가르침이다. 한발 더 나가자면 성서의 4대 복음은 Q를 참고해 후대 사람들이 가공한 얘기가 된다. 성서를 절대시하는 보수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불온한 주장이다.

Q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문서가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뭉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도마복음서’다. 서구에선 일찌감치 논란이 됐고 지식인 사이에선 교양으로 여겨지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일부 전문가 집단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도올 김용옥 세종대 석좌교수가 최근 한꺼번에 내놓은 『도마복음이야기 1』과 『큐복음서』(통나무)는 그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의 보수적 풍토에 대한 도발이나 마찬가지다. 핵심적이지만 어려운 철학적 문제를 쉽게 풀어 대중에게 던지는 도올의 솜씨가 돋보인다. 남들이 꺼리는 민감한 이슈를 과감하게 정면으로 제기하는 힘이 느껴진다.

『도마복음이야기』는 중앙SUNDAY에 연재해 온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연재를 위해 현장 답사까지 다녀온 도올이 역동적인 글솜씨로 꾸민 ‘역사기행’이라 읽기 편하다. 『큐복음서』는 좀 더 전문적이다. 서문에 도올의 생각이 잘 정리돼 있다.
도올은 자신의 저서가 ‘살아 있는 예수’와의 만남이 되리라고 자부한다. 신앙을 떠나 문명을 이해하는 교양으로 더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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