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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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12)『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그러니 절 믿어달라는 말입니다.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나도 따라가겠소.』 『아닙니다.우선 저쪽에서 나를 원하니까,나 혼자 가겠습니다.뒷일을 부탁합니다.』 죽창을 든 일본인들 쪽으로 태수가 다가가는 사이 등뒤에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믿고 기다려 봅시다.이보게 태수.
자네한테 무슨 일이 있다하면 가만 있을 우리가 아니니까 힘을내라구.배짱 뒀다가 뭐하겠나.』 태수가 뒤를 향해 주먹을 쥔 손을 흔들었다.와아 하는 함성이 일면서 기세를 올리느라 가지고나와 있던 밥그릇이며 철판 조각들을 두들겨댔다.태수가 징용공들앞으로 나섰다.
햇빛을 마주하고 늘어서 있던 일본인들의 죽창이 한순간에 태수를 향하여 겨누어졌다.눈을 가늘게 뜨면서 태수는 자신을 겨누고있는 죽창을 내려다보았다.천천히 그가 머리를 들었다.저 대나무끝이 내 피를 부르고 있다.아니 조선인의 가슴을 겨누고 있다.
맞서 싸워서 개처럼 죽으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다.저건 미끼일뿐이다.속지 말자.그는 어금니를 힘주어 물었다.처음부터 내가 노렸던 건 이 저주받은 섬에서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나가게하는 거였어.이미 난 사람들을 빼돌렸어.
난 단칼에 이 놈들의 멱통을 딴 거나 같아.이제부터는 얄밉도록 교활해야겠지.치사하게 지혜로워야 한다.
태수가 소리쳐 불렀다.
『우치다, 어디 있나?』 바람에 불리듯 일본인들의 대창이 움직였다.그들의 등뒤에서 우치다가 몸을 내밀었다.그가 손을 내젓는 것과 동시에 태수를 겨누고 있던 죽창 끝이 하늘을 향해 일제히 움직였다.
앞으로 나선 우치다가 그를 잠시 노려보았다.등뒤로 다가서는 조선사람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면서 태수가 말했다.
『이야기할 게 있다고 했나?』 『그렇다.』 『좋다.사무실로 함께 가겠다.』 『그런데 왜 너 혼자냐? 우린 둘을 원했다.』어느새 알고 있었기에 한씨를 찾는단 말인가.태수가 팔을 내저으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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