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으로 떠난 전 두산회장, 성지건설 오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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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박용오(71·사진) 전 두산그룹 회장이 칩거 2년7개월 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그러나 화려한 컴백은 아니다. 매출액 2000억원대의 중견 건설업체인 성지건설 오너가 됐다. 그는 2005년 7월 오너 3세들의 경영권 다툼인 ‘형제의 난’으로 일선에서 물러났었다.

성지건설은 27일 주식시장 마감 후 박 전 회장이 김홍식 성지건설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 8명이 보유한 주식 24.4%(146만 주)를 730억원(주당 5만원)에 인수하기로 계약했다고 공시했다. 양측은 성지건설에 대한 실사를 이른 시일 안에 마무리 짓고 본계약을 할 계획이다. 박 전 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두산 주식 10만여 주(0.42%, 185억원 상당) 중 상당량을 팔고 대출을 받아 인수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회장 측 사정에 밝은 한 재계 인사는 28일 “박 전 회장이 지난해부터 사업체 인수를 검토해 왔다”며 “아들인 경원·중원씨도 경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와 두 아들이 과거에 모두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에서 일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건설업체를 골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회장은 두산을 떠날 때까지 4년여 동안 두산산업개발 회장을 겸직했다.

‘형제의 난’ 역시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두산산업개발 소유권 다툼에서 시작됐다. 박 전 회장은 이 회사를 계열분리해 자신의 두 아들에게 주려 했고, 이에 나머지 형제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급기야 그는 두산가의 비자금까지 폭로했고, 두산 형제들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박 전 회장과 아들들은 두산 가족회의에서 ‘영구제명’됐으며 3세 삼형제는 비자금 문제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 전 회장과 두 아들은 제명 이후 두산그룹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경원씨는 정보기술(IT)업체(전신전자)를, 중원씨는 재생에너지업체(뉴월코프)를 경영했으나 실패해 현재 대표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성지건설은 지난해 매출액 2100억원, 당기순이익 80억원에 도급순위 55위로 수익성이 높고 재무구조가 탄탄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1969년 설립됐으며 인천 문학경기장, 마포대교 확장 공사를 맡기도 했다. 최근 ‘장하성펀드’로 통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가 이 회사 지분 5.1%를 확보하면서 경영권 참여를 선언해 주목을 받았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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