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수면제 3주 이상 복용 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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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긴 겨울,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잠들어 있다고 여겨질 때 침실은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공간이 된다. 하고 싶은 것이라곤 잠을 자는 것뿐인데 깨어 있다면 낭패감·분노·우울감이 잠을 다시 달아나게 한다. 살아가면서 3명 중 1명은 3∼4일에서 길게는 1개월까지 지속되는 수면 장애를 겪는다. 10%는 1개월 이상 수면 장애가 이어지는 만성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럴 때 강한 유혹을 받게 되는 약이 수면제다. 그러나 선뜻 복용하기는 꺼림칙하다. 우리 국민은 수면제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어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면제를 ‘자살용 약’으로 쓴 것도 수면제 기피증을 도왔다.

◇수면제 위험한가=1960년대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수면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수면제는 극히 위험한 약이었다. 페노바비탈이란 일종의 마취제가 수면제로 널리 사용됐는데 이 약을 과다 복용하면 호흡이 억제돼 사망에 이른다. 마릴린 먼로의 사인도 이 수면제의 과량 복용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벤조디아제핀 이후의 수면제는 생명까지 위협하진 않는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박두흠 교수는 “수면제 의존성(금단증상+내성)이 수면제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로 사용된다”며 “약 복용을 중단했을 때 금단증상이 나타나고 같은 약효를 얻기 위해 복용량을 계속 늘려가야 한다면 의존성이 큰 수면제”라고 설명했다.

◇수면제의 한계는=잠은 얕은 잠, 깊은 잠, 꿈꾸는 잠(REM 수면)으로 나눌 수 있다. 뇌파가 느려지는 깊은 잠을 자야 신체에 쌓인 피로가 풀려 다음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다. 꿈꾸는 잠을 자는 동안엔 낮 동안의 학습·스트레스 중에서 불필요한 것은 삭제되고 꼭 필요한 것만 남겨진다.

수면제를 복용했을 때 늘어나는 것은 얕은 잠이다. 깊은 잠과 꿈꾸는 잠을 자는 시간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어든다. 수면제를 복용한 다음날 아침에 “한숨도 잔 것 같지 않게 몸이 무겁다”고 불평하는 것은 이래서다.

◇수면제 복용 전엔…=강남성모병원 정신과 배치운 교수는 “경험적으로 불면증 때문에 병원을 찾은 환자의 30%는 수면제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며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에게 수면제 처방에 앞서 수면환경을 바꿔보도록 권유한다”고 조언했다.

^아침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하고, ▶주간에 밝은 햇살 아래에서 1시간가량 운동하며(밤에 멜라토닌 분비량이 늘어난다) ▶저녁에 과도한 운동을 피하고 ▶침대에선 잠·성행위 외엔 어떤 일도 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도 수면이 개선되지 않으면 수면제를 복용하되 3주 이상 계속 복용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의존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행동요법 효과적=노르웨이 베르겐 대학 연구진은 46명의 만성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수면제와 인지행동요법(CBT)의 효과를 비교했다. 이 연구결과가 실린 미국의학협회지(JAMA, 2006년 6월)에 따르면 CBT를 받은 그룹에선 6주 뒤 깊은 수면 시간이 평균 27% 늘어난 반면 수면제(이모반, 국내 미수입)를 6주간 복용한 그룹에선 20% 감소했다

연구팀은 CBT를 위해 ▶수면 위생(침실의 온도·소음 등) ▶수면 제한 ▶침대에선 잠만 자기 ▶수면과 관련한 잘못된 속설 바로잡기 ▶근육 이완요법 등 다섯 가지 방법을 동원했는데 이 중 수면 제한(최장 6시간만 침대에서 생활하기)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전했다.

◇술은 수면제가 아니다=수면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술은 수면제보다 의존성이 강하다. 또 깊은 잠을 방해한다.

우울증 치료제나 항히스타민제가 든 감기약은 수면제의 대안으로 흔히 쓰인다. 항히스타민제는 낮에 졸리고 금방 내성이 생긴다는 것이 문제다. 우울증을 함께 겪는 불면증 환자에겐 우울증 치료제가 ‘일석이조’의 효과를 나타낸다.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과 김대호 교수는 “우울증 치료제는 전문 수면제와는 달리 자연 수면을 유지시키는 것이 장점”이라 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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