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살고재산도키우고>곤지암 金仁燮씨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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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의 전세값 급등으로 서울살이에 주름살이 늘어만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김인섭(金仁燮.44.삼성화재이천영업소 대출상담소장)씨는 바로 그때문에 도시를 탈출했던 6년전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경기도성남시의 꽤 큰 병원에서 원무과장으 로 근무하던그는 당시 27평형아파트를 2천만원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그러다 88올림픽이 끝나고 집값이 광란의 폭등세로 급반전한 89년초,金씨가 살던 아파트도 시가 4천만원에서 7천만원으로 뛰었고전세값도 덩달아 4천만원으로 올랐다 .
같은 병원에서 맞벌이를 했던 金씨부부였지만 하루아침에 전세값이 두배로 뛰는데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하도 앞길이 막막해 경기도광주군도척면상림리에 포도밭을 갖고 있었던 친구에게 신세타령이나 하러 갔다가 『마침 마을에 토담집이 하나 비었으니 내려오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내친 김에 전원주택지 전문중개업소인 용(龍)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원무식.(535)2233)를 찾아 광주 인근의 전원주택지를 하나 물색해 주도록 부탁했다.
마침 바로 그 마을에 대지와 밭이 섞인 3백36평짜리 땅이 3천5백만원(평당 10만원선)에 매물로 나왔다.전세값을 빼 우선 그 땅을 샀 다.
서울토박이로 시골생활에 대해 공포감마저 갖고 있었던 아내를 어르고 달래 마을 토담집으로 이사온 것이 89년 여름.정말 떼밀리다시피해서 도시를 떠난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패배감으로 처음엔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러나 퇴근후 손발을 씻고 마루에 올라 서다가 문득 하늘을 쳐다본순간,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마당으로 쏟아져 내려오는걸 보면 「아,이런게 사는 것이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 왔다.「도시에서 밀려났다」는 패배감은 그렇게 씻겨 내려갔다.
성남으로 출.퇴근 하면서 밭에다 수박도 심고 제법 농사꾼 흉내를 낸지 1년이 지나 집을 지으려고 허가를 신청했으나 도무지반응이 없었다.현지로 전가족이 이주했고 1년동안 농사도 지었지만 군청공무원들은 그가 정말 눌러 앉을 사람인지 통 미덥지가 않은 모양이었다.견디다 못해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군수에게 탄원서를 올렸다.그제서야 집을 지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땅을 산지 2년6개월만의 일이었다.
92년4월 처음 집을 짓기 시작할때는 평당 1백80만원정도 예상했던 건축비가 하나 둘 욕심을 부리다보니 3백만원선으로 뛰었다.땅값이 오른 덕분에 땅을 담보로 3천만원 융자를 받고 직장을 옮기면서 받은 부부의 퇴직금을 몽땅 털어 넣 고도 모자라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해 겨우 집을 지었다.1층 20평,2층 12평의 아담한 목재골조주택(외벽은 적벽돌 마감)이 마련됐다.이제 그런대로 정착을 했지만 대학진학을 위해 안양에서 혼자 하숙하고 있는 큰아들(고1)이 金씨부부는 몹시 안쓰럽다.
일찌감치 시골맛을 본 둘째(국5)는 오히려 전원생활을 즐기는편이지만 철 들어 내려온 첫째만 이래저래 힘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金씨는 그러한 고생이 결국은 아들의 자산(資産)으로 남게 될 것이라 믿으며 그가 밀려났던 도시로 아들 의 등을 떼밀었다. 李光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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