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한국현대사>10.분단의 원인을 찾아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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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련이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라.』운명의38선이 결정된 1945년8월11일 펜타곤(現 미국 국방부)의밤.이날 펜타곤은 깊은 정적속에 긴박감이 넘쳐 흘렀다.바로 이건물의 한 사무실에서 한반도의 분할선을 긋는 작업 이 전쟁부(War Department)작전국의 전략정책단에 의해 숨가쁘게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몇시간전 트루먼 美대통령은 합동참모부에『만약 소련군이 다롄(大連)港이나 한국에 있는 항구를 점령하지 않았다면 소련군보다 먼저 이 지역들을 점령하라』고 긴급 지시했다.이것은 소련의 全한반도 점령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트 루먼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트루먼 행정부와 美군부는 예상보다 며칠 빠른 소련의 대일전(對日戰)참전에 매우 긴장했다.
원래 트루먼과 번스는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기 전 원자폭탄을투하해 일본을 항복시킴으로써 소련의 참전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했다.
이런 계획이 성공하면 소련의 참전 대가로 지불하기로 약속한 극동에서의 여러 이권(利權)을 소련에 주지 않아도 됐다.한반도역시 미군이 단독 점령하면 그만이었다.그런데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이 모두를 무산시켜버린 것이다.
소련은 대일전에 참전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버리면 아무런 이권도 차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대일전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소련에 대한 트루먼의 인식은 전임 대통령 루스벨트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트루먼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므로 소련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려 했다.반면 루스벨트는 소련을 협력상대로 인식했고 전후(戰後)에도 협력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
물론 트루먼도 처음에는 소련을 대일전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군부의 압력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소련과 손잡으려 했다.그러나가공할만한 무기인 원폭 개발에 성공하자 소련에 대한 태도를 바꿔 대소(對蘇)강경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했던 것이 다.
트루먼이 원폭으로 소련과 얽힌 복잡한 문제들을 단숨에 해결하려는 결심을 굳히는 데는 영국의 처칠과 그동안 소련의 참전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美군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5년7월22일 처칠은『대일전에 소련을 절대로 끌어들여서는 안된다』고 트루먼에게 강력히 건의했다.다음날 마셜 美육군참모총장 역시『우리가 원폭을 소유했기 때문에 소련의 참전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美군부의 공식 견해를 트루먼에게 전달했다.
트루먼은 회고록에서『나는 우리가 길고도 쓰라린 고통을 극복하며 과감한 노력을 기울여 얻게 되는 결실을 소련이 힘도 들이지않고 얻어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45년7월24일 스팀슨 美전쟁부장관과 마셜총장의 동의를얻어 원폭투하작전을 최종 확정했다.
원폭투하작전의 확정은 한반도에 대한 미군의 군사작전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45년6월18일 트루먼이 직접 주재한 백악관 전략회의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작전은 실시하지 않기로 최종 확정됐다.그렇지만 원폭투하작전 이후 한반도를 단독 점령하는 것으로 그 계획이 바뀌었다.
점령순위도 확정됐다.서울이 최우선,부산이 두번째,그리고 군산이 세번째 순위였다.
그러나 한국을 단독 점령하려던 미국의 계획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으로 깨지고 말았다.45년8월8일 대일전에 뛰어든 소련군은단숨에 한반도 동해안 최북단인 웅기와 나진 근처에서 육.해군 합동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이제 미국은 한반도를 단독점령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소련이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는 것을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가급적 한반도의 북쪽에서 소련군의 남하(南下)를 저지해야만 했다.여기에서 미국이 모색한 것이 바로 한반도 분할선이었다.분할선을 긋는 작업은 美전쟁부 작전국의 전략정책단에 맡겨졌다.전략정책단장은 린컨 준장이었고 정책과장이 본스틸 대령,정책과장보는 러스크 대령이었다.
전략정책단은 45년8월11일 밤 38선을 한반도의 분할선으로선택했다.이 선은 수도 서울과 부산.인천이라는 주요 항구들을 미국의 영역속에 포함시키는 이점이 있었다.
이들의 결정은 트루먼의 재가를 얻었다.스탈린도 8월16일 38선을 한반도의 분할선으로 채택하는데 동의했다.
트루먼은 회고록에서『38선을 분할선으로 채택할 당시에는 일본의 항복을 받는 책임의 편리한 할당이라는 것 밖에 다른 생각이없었다』고 술회하고 있다.미국정부 역시 아직까지 이러한 입장을고수하고 있다.그러나 트루먼의 발언과 미국정부 의 태도는 전후한반도의 분할로 야기된 한국전쟁과 같은 엄청난 비극에 대한 원인제공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적인 발언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한반도의 분할 결정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최대한 고려한 정치적결정이었다.이렇게 볼 때 미국 역시 한반도 분단에 대한 책임을결코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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