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세상 - 탄현동 요양시설 '소중한 사람'

중앙일보

입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역한 오물냄새가 코를 찌른다. 퀭한 눈빛의 노인들은 낯선 이의 방문에도 별 관심이 없다. 각자 자리에 눕거나 앉아 저마다의 시간을 보낼 뿐이다. 날씨라도 궂은 날이면 간병인들의 긴장은 더욱 커진다. 노인들의 감정이 격해지는 탓이다. 지난 22일.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자리잡은 치매·중풍노인 요양시설 ‘소중한 사람’을 찾았다.

공과금 지원받지만 33명 생활비 턱없이 부족
이안나 원장, 무보수 운영…"힘들지만 큰 보람"

 
‘소중한 사람’은 치매나 중풍으로 가정에서 간병이 어려운 노인들의 보호·요양을 목적으로 지난 2003년 문을 열었다. 불교신자인 이안나(여·49) 원장은 종교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노인복지에 눈을 떴고, 아예 이 길을 직업으로 택했다. 처음엔 한 명의 노인을 모시고 시작했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기 시작하자 3개월만에 15명이 모였다.
의욕에 차 시작한 일이었지만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았다. “(노인들이)대·소변을 못 가리니까 악취가 끊이는 날이 없었어요. 한 1년은 밥도 못 먹을 정도였죠. 간병이라든가 이 분야에 전문지식도 없었고, 괜히 시작했나 후회하고 힘들어 울기도 많이 했어요.”

입소하는 노인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각오했던 일이지만 함께 생활하던 이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 또한 이 원장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폐암으로 시설에서 6개월을 투병하면서도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던 노인. 가족과 함께 임종을 맞도록 내보냈으나 결국 다시 돌아와 이 원장 앞에서 눈을 감은 노인.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 이들의 얼굴이 이 원장에겐 여전히 눈에 선하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 치매·중풍노인 요양시설이다.

현재 ‘소중한 사람’에는 33명의 노인이 생활하고 있다. 이 원장과 5명의 간병인, 물리치료사인 이원장의 딸까지 7명의 직원들이 24시간 노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킨다. 시설을 시작하기 전 그렇게나 여행을 좋아했다는 이 원장이지만 2003년부터 지금껏 근교 나들이 한번 못나갔다. “한번 큰맘 먹고 고향인 전남 장흥에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 날 노인 한 분이 돌아가셔서 결국 부랴부랴 올라와야 했어요. 지금은 여행은 꿈도 못 꾸죠.”

힘들 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지내온 시간이 어느덧 5년. 이젠 노인들과의 생활이 몸에 익어 자연스런 일상이 됐다. 여건이 안 돼 미인가 시설로 3년을 보내고 지난 해 드디어 신고시설이 될 수 있었다. 이후 시에서 공과금 정도는 지원을 받게 됐지만 여전히 살림살이는 빠듯하다. 매달 들어가는 약값만 100여 만원. 300여 만원이 훌쩍 넘는 식비와 직원들 급여까지. 입소 노인들의 가족이 내는 실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살림이다. 덕분에 이 원장 본인은 지금껏 단 한번도 월급을 챙겨가지 못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원장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 “즐겁고 보람되다”며 밝게 웃는다. “병원에서도 전혀 거동을 못하던 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일어서시고 걷게되는 일을 자주 봤어요. 마음이 편안해서 일까요? 신기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편안히 임종을 맞으실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이 원장이 시설을 운영하며 가장 아쉬운 점은 부족한 시설. 노인들이 자유롭게 활동할만한 넓은 공간과 제대로 된 편의시설을 갖추고 싶지만 녹녹치 않은 바람일 뿐이다. 가능하다면 지금의 건물 위층을 더 임대해 공간을 늘이고 싶지만 돈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 “법인시설은 그래도 대출이 가능한 것 같던데 우리 같은 개인시설은 어렵죠. 작은 규모의 시설들도 복지기금이나 뭐 그런걸 쉽게 지원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정에 목마른 어르신들에겐 가족의 사랑이 가장 큰 보약이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건 역시 가족들이 찾아와 줄 때예요.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가족 분들이 자주 들러 어르신들이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이 원장의 바람을 뒤로하고 문밖으로 나서자 함박눈이 시야를 가린다. 쌓여 가는 눈송이처럼 지역사회의 사랑과 관심이 어려운 이웃의 삶 속에 수북하게 쌓이길 기대해본다.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yiks@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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