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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 공항 의전실 기업인에 개방 실효성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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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차 국내외 출장이 잦은 장현주(45)씨는 공항을 자주 드나든다. 인천공항은 석달에 한 번, 김포공항은 두 주에 한 번 꼴이다. 그는 공항을 출입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이용하기가 편해져서다. 시설이 좋아진 것은 물론 대기 시간도 크게 줄었다. 직원들도 눈에 띄게 친절해졌다. 그는 지난 1월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기업인 1000명에 대한 공항 의전실 개방 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비록 자신은 이번 조치의 혜택을 받지 못 하겠지만, 이를 계기로 공항 서비스가 더 나아지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포공항 의전실 내부 [사진=이여영 기자]

하지만 부분 개방 논의가 국내선(김포공항)에까지 확산돼야 할 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수속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국제선과 달리 국내선은 일반 탑승객과 의전실 이용자의 수속 시간에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내국인들에게 국내선 의전실의 특혜가 상대적으로 더 부각될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장씨는 “의전실을 이용하더라도 수속 시간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국내선까지 기업인들에게 개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상당수 공항 이용객들도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항공사 측이 김포공항 의전실 개방 준비를 서두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 5일 둘러본 김포공항 의전실(일명 귀빈실, VIP룸)은 전에 비해 이용자의 특권이 많이 축소됐다. 의전실은 공항 청사 3층 구석에 있다. 이곳 이용자들은 검색절차가 간편하다. 3부 요인은 검색없이 입장할 수 있다. 일반 승객은 신분증을 제시한 후 엄격한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의전실 이용자라고 해도 예전처럼 탑승구를 조정받는 혜택은 없다. 과거 이용자들은 의전실과 연결되는 12번과 14번 게이트에서 바로 탑승할 수 있도록, 항공기 탑승구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많이 했다. 이 때는 공항공사가 탑승구를 지정할 수 있어 이런 요청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각 항공사가 탑승구를 정하기 때문에 스케줄이 뒤엉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일반인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에 비하면, 별도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특혜다. 김포공항 의전실은 1ㆍ2ㆍ3ㆍ5호실 모두 네 개로 이뤄져 있다. 핵심 3부 요인이 이용하는 곳이 1호실(사진)이다. 기업인들이 주로 이용하게 될 2호실(사진)은 개방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원래 테이블 두 개에 20여석 정도였지만, 최근 테이블 한 개와 의자 예닐곱개를 더 갖다 놨다. 인터넷 전용 컴퓨터도 설치할 예정이다. 3ㆍ5호실은 소규모의 별실이다. 이 곳에서는 전화와 팩스, 간단한 다과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옷장을 따로 설치했는가 하면, 세면 시설도 갖췄다. 특히 공항 전체가 금연 구역이지만 의전실만은 예외다. 의전실 관계자는 “금연 요청을 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아예 재떨이(사진)를 비치해두고 있다”고 밝혔다.

의전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크게 네 부류다. ‘공항 귀빈 예우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우선 현직 대통령과 3부 요인, 정당 대표, 외교 사절이 해당된다. 그 다음으로 의전실 운영 예규에 따라 정해진,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국립대 총장 등이 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나 경제 5단체장, 종교 지도자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 밖에 독립 유공자라든가 국세청에서 추천한 모범 납세자 등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예를 들어 방한하는 중요한 바이어들을 환대하고 싶은 경우에도 의전실을 쓸 수 있다. 대신 이 때는 유료다. 2시간 기준으로 국제선은 7만7000원, 국내선이 5만5000원이다. 그러나 김포공항에도 양대 항공사의 우수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항 라운지가 있기 때문에 유료 이용 수요가 크지는 않다. 실제로 둘러본 항공사 라운지는 의전실에 비해 더 캐주얼한 분위기이고, 훨씬 다양한 종류의 다과를 갖춰 놓았다. 지난해 말 김해공항에서 소란을 피워 항공기 출발을 지연시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도 의전실이 아니라 항공사 라운지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공항 이용객의 신변 보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의전실 이용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외환 위기 직후 방한했던 마이클 잭슨의 경우 규정과 무관하게 의전실을 이용했다. 또 영화배우 심은하가 신혼여행을 떠날 때도 취재진과 승객이 지나치게 몰려 들어 잠시 의전실로 대피한 적이 있다.

의전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환 위기 직후에도 지금과 같은 의전실의 부분 개방 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기업인 우대 차원에서, 재계 단체들이 추천한 기업인들이 의전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당시에는 기업인 의전실을 따로 마련했다. 이 의전실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조용히 사라졌다. 실제 이용객이 많지 않았던 데다 재계의 개방 요구도 잦아들었기 때문이었다.

기자가 가본 국내선 의전실은 개방준비가 한창임에도 예전에 비해 특혜가 줄어 주요 기업인들이 절실하게 찾아야 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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