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우리 기업觀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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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인 물보다 흐르는 물이어야 자정(自淨)작용이 활발하다.닫힌사회보다 열린 사회여야 문물(文物)이 발달하고 시민의 자유가 신장된다.근세 역사를 보면 국경의 울타리를 낮춰 상품.자본.노동.정보의 흐름에 장애요인을 줄인 나라일수록 경 제발전이 순조로웠다.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개방화.국제화는 거스르기 어려운 오늘날의 거센 물결이다.파도타기 기술의 기본이 균형감각과 유연.민첩한 몸놀림에 있듯이 나라 안팎의 급격한 여건변화에대응하는 국민경제운영에도 접근방법의 신축적 조정이 관건 이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운영에 있어 무게중심을 정부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 옮기고 민간부문,특히 기업부문의 창의력이 거침없이 발휘되도록 길을 터야 한다.가장 중요한 과제는 우리의 기업관(企業觀)을 재점검하는 일이다.
요즘 유행하는 세계화는 정부 정책이 아니라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으로 민간기업.금융기관들이 사업활동 무대를 확대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한데서 비롯된다.이들은 다각적인 사업네트워크를 통해 지구 전체를 하나로 엮어 사업을 펼침으로 써 결과적으로 종래의 국경개념이 사실상 붕괴되고 있다.민간기업의 영업 본거지는 법률적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각종 규제와 조세등을 감안해 결정된다.국내의 각종 조세율이 지나치게 구속적이거나 높다고판단되는 경우 기업은 해외이주를 서슴 지 않는다.사회일반에 反기업적 여론이 지배적인 경우에도 이러한 기업의 국경탈출이 충동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국내기업들이 자국내에서 경제활동을 계속하고 외국기업들을 국내로 유치,고용창출과 조세납부등을 통해 자국에 경제적으로 기여하도록 각종 규제완화.세율인하등 유인조치 베풀기에 게을리할 수 없다.개방화시대에는 국적을 따라 기업을 구별하기보다 자국에 대한 국민경제적 기여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법률적으로 국내기업이나 사업 본거지를 해외이주시킨경우보다 오히려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우리의 국민경제에 기여가 크다면 이 외국기업을「우리 기업」으 로 간주해야 하는 것이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계산법이다.과연 우리사회가 이러한 계산법을 수용할 만큼 성숙했는가.
국경이 허물어지는 개방화시대에 있어 정부의 기업관이 바뀌어야할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공정거래 관계에 있다.종래에는 대기업은 문어발식 경영의 무법자이므로 규제대상이 돼야 하고 반면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선량하고 억울한 피해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어 보호.육성돼야 한다는 단순 논리가 통용되었다.기업의 소유.경영 분리 주장도 거의 신앙에 가까운 원칙이었다.이러한 주장에 여전히 상당한 유효성이 인정되지만 시대상황의 변화는 고정관념의 재검토 또는 수정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날 폐쇄경제시대에는 국내 대기업들의 독과점적 시장지배력,이들과 중소기업간 거래관계의 공정성.균형문제가 이슈였으나 개방경제시대에는 외국의 거대기업과 국내 대기업간의 경쟁관계가 뜨거운 이슈로 달아오르게 된다.범세계적 시장지배력으로 따져본다면 국내 대기업이라 해봐야 외국 거대기업에 비해 말상대도 어려운 경량급(輕量級)일 수밖에 없다.국내시장에서도 외국 기업들은 우리 정부에 시장개방압력을 세차게 몰아줄 본국 정부의 뒷심이 있는 반면 우리는 국내기업의 뒤를 보아 줄 뒷심으로 국내 정부에힘이 부칠 수 밖에 없는 경제단체가 있을 따름이다.앞으로 정부의 공정거래행정의 중요과제는 지난날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문제 못지않게 외국 거대기업과 국내 대기업간의 문제를 공정하게다루는 것이다.
개방화시대에는 신기술개발의 가속화,제품의 생명주기(周期)단축,국제금융시장의 각종 리스크 확산등으로 위험분산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도 국내 기업활동에 족쇄를 조이는 것이 국민경제차원에서 바람직한가.
***「공정거래」수정 필요 지난날처럼 기업을 국내에 갇혀있는경제단위로 생각하거나 국내 대기업이 경쟁없이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국내기업을 봉(鳳)으로 여기고 각종 準조세부담만을 안겨도 좋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정부와 국민은 국내기업을 계속 알을 잘 낳아주는 암탉으로 키우는 자세로 바뀌어야 하겠다.
〈西江大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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