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있는풍경>경기평택 금정 蘭농원 金正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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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빛바랜 볏가리가 원추형 텐트인양 서있는 황량한 겨울벌판에서 바람을 탄 전선줄이 토해내는 겨울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런 겨울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푸르름을 자랑하는 소나무밭이여기저기 섬처럼 떠있는 들판 한쪽 양지녘에 자리잡은 금정 난농원에는, 생명을 잉태하는 뜨거운 열기가 찬바람을 가르며 들어간안경잡이의 시야를 한동안 흐려놓았다.
서울에서 88㎞지점인 경기도 평택군 고덕면 방축리.경부고속도로 안성 톨게이트에서 내려 다시 평택시내를 거쳐 안중쪽으로 가다보면 휑한 벌판 한가운데로 길이 나있고 그 길을 돌아가면 철탑이 유난히 많은 야산 밑으로 「난(蘭)박사」 김 정주(金正柱.50)씨의 농원을 만나게 된다.
소나무밭이 둔덕인양 바람을 막아주는 농원에서 그는 난을 「만들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그가 조직배양을 통해 생명을 준 난들은 답례라도 하려는듯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며 화사한 꽃들을피워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난의 고매한 자태에 매료돼 78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난을 모두 소개한 책 『蘭』을출간하기도 했다.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후 소망과는 달리 교사.공무원을 전전해야 했던 그에게 이 책이 계기가 돼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됐다는 것.
평소 난을 좋아해 세계 각지를 돌며 난을 수집했던 LG그룹의구자경(具滋暻)회장이 그 책을 읽고 그를 찾아내서는 자신의 그룹에서 세운 연암축산원예전문대에서 난초학을 강의하고 학교내 난농원의 관리책임을 맡아줄 것을 의뢰했던 것이다.
그는 주저없이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학교가 있는 충남 성환으로자리를 옮겼다.대학 졸업후 약 2년간 한국원예연구소에서 식물의조직배양에 대한 공부를 했던 그는 이곳에 오자 7년여동안 난을돌보면서 고부가상품인 난의 조직배양에 몰입했 다.
언젠가는 자신의 농원을 가지리라 마음먹었던 그는 틈틈이 학교근처의 농원자리를 물색했고 4년전 자신의 뜻을 실행에 옮겼다.
4천만원을 주고 1천평의 땅을 마련해 조립식 주택과 농원용 비닐하우스 몇개 동을 지었다.약품으로 만든 인공흙에다 적출한 서양란의 조직을 배양,10㎝크기의 종묘로 키우는데는 약 2년이걸린다. 그런만큼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출하에 접어들었는데 지난해 14만본의 서양란 종묘를 팔아 7천만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순익은 50% 수준.
그는 또 2백여평의 온실에 2백여종의 동양란 1만2천여분을 키워 또다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조직배양을 통한 난생산은 첨단 농업으로 수입이 높지만 최근수입된 종묘들과 겨루려면 품질과 가격에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농사의 매력은 뿌린만큼 거두는데 있는만큼 열심히 애정을 갖고 전력투구하면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학교에서 조직배양을 공부한 4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그는『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복받고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平澤=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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