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더드 차터드銀 '누구 손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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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은행 인수전에서 씨티은행에 밀린 영국의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이 경영권 위기를 맞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스탠더드 차터드의 최대 주주이자 싱가포르 최대 갑부인 탄 스리 쿠 텍 푸앗(87)이 지난 21일 밤 심장질환으로 숨지면서 쿠 회장이 소유한 지분의 향방이 불투명해졌다고 23일 보도했다.

쿠 회장은 이 은행의 지분 13.5%(약 9억달러어치)를 지닌 최대 주주이자 현 경영진을 후원해온 우호주주였다. 싱가포르 호텔체인과 부동산 등 26억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쿠 회장은 1986년 영국 로이즈은행이 스탠더드 차터드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자 이에 맞서 홍콩 YK 파우, 호주 로버트 홈즈와 함께 37%의 지분을 매입해 합병을 무산시킨 바 있다.

그러나 쿠 회장의 사망으로 지분 유지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14명의 자식들이 주식을 상속받게 되면서 어느 때보다 스탠더드 차터드의 경영권이 불안해진 상황이라고 FT는 전했다. 지분매각이 곧바로 인수합병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쿠 회장의 지분은 주로 그의 싱가포르 굿우드파크호텔, 호텔 말레이시아와 부동산업체 센트럴 프라퍼티스 등의 소유로 등재돼 있으며, 싱가포르의 유명 영화감독인 에릭 쿠를 포함한 세 아들이 이들 회사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쿠 회장이 살아있을 때인 지난 수년간에도 수차례 지분 매각에 대한 제안을 받았으나 쿠 회장이 앞장서 지분 매각에 반대했었다.

에릭 쿠 감독은 "아버지는 매우 검소하고 인간적이었으며 단순한 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엄청나게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며 "지금 그의 가족이 스탠더드 차터드 주식의 처분 계획에 대해 밝히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벌써 아시아권 네트워크가 부족한 바클레이와 한미은행을 인수한 씨티그룹, 말레이시아 홍 레옹 그룹의 총수이자 홍콩 다오 헹 은행의 전 소유주였던 쿠엑 렝 찬 등이 스탠더드 차터드의 잠재적인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다. JP모건도 한때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됐으나 최근 인수한 뱅크원과의 합병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스탠더드 차터드의 현재 주가 수준은 순이익의 약 20배로 바클레이의 11배,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의 16배 등 경쟁 은행들에 비해 높은 상태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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