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김승연 회장이 투자 2배로 늘린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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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해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재계 총수들의 회동 직후 김승연(그림) 한화그룹 회장은 서울 장교동 사옥의 27층 집무실에 들렀다. 5월 이후 근 8개월 만의 사무실 출근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집무실을 둘러본 뒤 금춘수 경영기획실장 등 주요 임원들에게 그간의 소회와 경영 계획, 당선인과의 대화 내용에 관해 한 시간 정도 길게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새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의지가 대단하더라. 우리도 뭔가 화답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생각이 구체화한 것이 2일 발표된 투자 및 채용 계획이다. 한화는 지난해 1조3000억원가량이던 투자를 올해 2조5000억원으로 늘리고, 대졸 신입사원 채용 인원도 30%가량 늘어난 1500명으로 잡았다.

다른 대기업들도 이명박 당선인과의 회동 직후 투자를 대폭 늘린다고 밝혔지만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려 잡은 한화의 ‘파격’이 눈길을 더 끌었다. 자동차 및 항공기 부품회사 인수 등 해외 투자도 있지만 국내 설비투자를 크게 늘려 일자리 창출에 일조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포석이 깔려 있다고 재계는 읽고 있다. 우선 김 회장 본인의 경영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다. 2011년까지 ‘그룹 매출 가운데 해외 비중 4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글로벌 경영의 기치를 올리던 그는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여러 달 자리를 비웠다.

이런 공백을 메우려면 투자 확대를 통한 성장 전략으로 흐트러진 그룹 분위기를 다잡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룹 관계자는 “올해 김 회장이 손수 결정할 굵직한 해외 사업이 산재해 그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새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라는 해석이다. 김 회장은 이날 신년 하례식에서 투자 확대 계획을 손수 발표하면서 “새 정부의 경제 활성화 의지에 적극 발을 맞추겠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해 해석한다. 한화는 2002년 대생을 손에 넣었으나 이종구 의원 등 한나라당 일부에서 ‘특혜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결국 국제중재로까지 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나라당이 여당이 된 마당에 김 회장으로선 새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화 측은 “대생 인수의 적절성 여부는 올 여름께 나올 중재 결과로 가려져 정치적 상황과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본인과 그룹 이미지의 회복이 시급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 회장은 경영 복귀 후 달라진 ‘몸가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임직원들에게 먼저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고 전했다.

최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한 사회봉사 활동도 적극적이고 밝은 자세로 임해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덜었다. 2일 시무식에서는 “법원 명령에 따른 200시간의 사회봉사활동이 끝나도 이런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투자와 채용을 늘리는 것은 자신과 회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든든한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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