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생활과 문화와 종교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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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마지막 황제』로 우리나라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연출한 영화 『리틀부다』의 관객 가운데는 비구.비구니들과 함께 수녀들이 눈에 많이 띈다.복장으로 믿는 종교가 이들처럼 구별되지 는 않지만 그밖에도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이 이 영화를 보러 오는 것으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왜일까.한마디로 대답하긴 어렵지만 지금 우리네 생활은 종교를 필요로 하고 우리네 종교는 문화를 필요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위기감이라는 것은 반드시 전쟁이나 기아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현대적 풍요는 사람들로 하여금 따분함과 무력증을 앓게 한다.이것은 쉽사리 우울증으로 발전되고 개인은 군중속의 고독감에 시달리게 된다.경제적 윤택을 성취한 사회가 빠짐없이 빠져드는 위기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그러나 티베트 불교의 탄트리즘(tantrism)的 수행의 신비가 화면 자욱히 전단향의 향연처럼 밴다.거기에 석가모니의 출가.고행.시험.대각(大覺)의 이야기가 겹친다.한편으로는 서로 문화.종교.경제가 다 른 세 나라 출신의 아이들이 열반한 한사람 티베트 라마의 환생(還生)으로 태어난다.라마라는 말은 티베트 말로 길을 뜻한다.
종교를 찾는 것은 길을 찾는 것이다.현대 사람은 신비를 잃었기 때문에 다시 신비의 길을 찾는 것이다.현대인은 신비를 메마른 과학주의가 가져다준 우울을 치료할 처방으로 여기고 있는지도모른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영화 관람이라는 문화적 오락 행위가 종교적 예배와 같은 역할도 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현대성을 깨닫게 된다.서로 다른 종교간의 부질 없는 알력이 만드는 분쟁과 공포를 제거하려면 종교 의식의 문화적 양식을 새롭게짜는 것도 방도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극장에서 상영되는종교 의식에 참여하면서 배타성을 내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 많은 비구니와 수녀들이,또는 여러 상이한 신앙적 법복들이함께 어울려 흥미와 경건을 지니고 『리틀 부다』를 관람하는 것이 한국적 종교 문화 풍토로 정착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긍지와 안도의 마음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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