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1년] 4. 국가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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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을 동북아의 물류.비즈니스.금융.기술개발의 중심지로 만들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자는 참여정부의 국정목표는 웅장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비전을 제시해 다수 국민의 기대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집권 1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국민은 오히려 허탈감에 빠져 있다.

盧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국민의 차가운 평가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참여정부의 노력에 부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이 66%인데 비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은 5%에 그치고 있다.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세계의 공장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다가는 동북아의 경제 중심은커녕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중국의 도전 앞에 한국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고사하고 1만달러의 벽도 넘지 못한 채 아르헨티나처럼 주저앉고 말 위기에 처해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대내외 여건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국제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증대하고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것뿐이다. 국제정세의 변화와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우리는 외톨이가 되어 살 수 없다.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국내시장을 개방해 나가야 한다. 국제경쟁력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수준의 국민 생활마저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참여정부는 말로만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거의 일을 하지 않거나 심지어 거꾸로 일을 해왔다. 한국이 동북아의 경제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외국 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기업활동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장질서가 존중되고, 노사관계가 안정되어야 하며, 뛰어난 인력자원을 공급하는 교육체제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집권 첫 1년 동안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국민 다수의 즉각적인 불만을 달래고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부동산 시장을 규제하고,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의 투자환경을 조성하기보다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대통령의 친노동적 성향을 숨기지 않았고, 노사갈등의 현장에서는 법과 원칙이 헝클어지는데도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를 둘러싼 논란으로 노동자들의 기대도 잔뜩 부풀렸다. 국민 다수가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고교평준화 정책의 유지를 고집하고, 공교육 붕괴를 사교육 규제로 대처해 왔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을 추진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시장에 미칠 영향도 미미하고 여론의 지지도 높은 칠레와의 FTA 체결을 위해 정부는 엄청난 재정지원을 약속하면서도 국회비준을 받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약속에 대한 농민들의 신뢰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반대하는 지지자들의 요구도 큰 부담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포퓰리즘 정치에서 벗어나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지지표 계산만 하면서 정치를 하다 보면 페론처럼 국민의 지지를 단기적으로 동원할 수 있겠지만 나라는 망하게 된다. 둘째, 기업의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동북아 경제중심을 실천하는 것도,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기업의 역할이다. 셋째, 정책경쟁과 타협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책실패는 감춘 채 남의 탓만 찾으면 정쟁(政爭)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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