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새해에 바로 세워야 할 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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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둘째로 새해에는 필요한 권위를 바로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 참여정부는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와 더불어 꼭 필요한 권위마저 없애버리는 우(愚)를 범했다. 특히 고위직 공무원에 격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임명하여 그 직 자체의 권위를 떨어뜨린 예가 적지 않았다. 더구나 ‘관례’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퇴임 뒤에 무더기로 훈장까지 수여해 훈장의 권위마저 추락하게 만들었다. 훈장이란 국가를 위해 공을 세웠다고 인정받는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자리만 차지하고 일은 제대로 못한 사람에게도 수여했으니 그 권위가 살 리가 없다. 그러나 국가의 고위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권위가 필요하다. 새 정부에서는 인재를 널리 발굴해 적절한 인사를 함으로써 국가 고위직의 권위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셋째로는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대로 세워야 할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민이 힘들어했던 이유는 현재 삶의 고달픔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현재에 발을 딛고 있지만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지도자가 그 길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실용을 강조하는 새 정부는 지나치게 현재의 실용성을 강조하다 미래 그리기를 소홀히 하는 잘못을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이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에서 그러한 위험성이 보인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데, 미래 국가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과학기술이 소홀히 취급된 것이다. 물론 국가경쟁력강화특위에 과학비즈니스벨트 태스크포스(TF) 가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만으로 우리나라 미래 경쟁력 확보가 담보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도 매년 10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효율화를 추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데, 인수위원 중 그 부분의 전문가가 빠져 있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파견되는 전문위원에도 국가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부총리 부서인 과학기술부 출신은 없어 과연 인수위가 얼마나 좋은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사람이 많다. 비전은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같은 단순한 구호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국민들이 공유하는 비전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2008년은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밝아 왔다. 이 분위기가 이어져 올해에는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법치국가로서 거듭 태어나고, 권위주의는 사라졌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권위가 살아 있으며, 미래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 제대로 된 미래 비전이 세워지는 건강하고 밝은 국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대학장·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