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깨끗이 잊어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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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끗하게 잊어 주세요."

중국의 미혼 여걸 정치인 우이(吳儀.69.여.사진) 부총리의 은퇴 선언 메시지가 중국 전역에 강한 여운을 던지고 있다.

우 부총리는 성탄절 전야인 24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국제상회(商會.상공회의소) 대표 대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년 3월 열리는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중국의 의회에 해당)를 끝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완지페이(萬季飛) 중국국제상회 회장은 "공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중국무역촉진회 명예회장 직을 맡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우 부총리는 "이미 은퇴하겠다는 결심을 당 중앙에 보고했다"며 단호하게 사양했다. 우 부총리는 "공직이나 정부 산하 단체는 물론 민간 단체의 직위도 맡지 않겠다"며 "여러분이 나를 깨끗하게 잊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500여 명의 참석자는 박수갈채로 찬사를 보냈다.

10월 중국공산당 17차 전국대표자대회에서 우 부총리는 당 중앙위원과 정치국원 직에서 물러났다. 내년 3월 전인대에서 부총리직도 공식 사임할 예정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관은 "우 부총리가 정부 산하 단체의 명예직조차 사양한 것은 물러나는 공직자의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 신선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명예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미련없이 떠나겠다는 자세가 귀감이 될 만하다는 것이다.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출신인 우 부총리는 석유화학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1988년 베이징시 부시장에 발탁됐다. 91년부터 대외무역부(상무부의 전신)에서 통상업무를 줄곧 맡았다.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고 중국의 입장을 관철해 철의 여인이란 뜻의 '톄냥쯔(鐵娘子)'로 불리며 중국 인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집권하면서 정치국원과 부총리로 승진했다. 특히 2003년 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창궐했을 때 위생부장(장관)을 겸직하며 사태 수습에 성공해 '소방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우 부총리는 2005년 5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에 참배하자 그와의 면담을 전격 취소해 버리고 귀국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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