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14.분권화 막는 法制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방자치로 가는 길은 곧 권력의 중앙집권을 분권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중앙정부나 중앙 정치권에는 분권화의 뒷다리를 잡는 법과 제도.관행이 아직도 뿌리가 깊다.
경우에 따라 분권화로의 진행과정에서 거슬러가는 경우도 있다.
내무부는 지난 9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면서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국가직 공무원(간부직임)임명때 해당 자치단체장이 행사하게 돼있는 제청권을 삭제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 3월 여야합의에 의해 지방자치법이 개정될 때 야당의 요구로 추가됐던 자치단체장의 제청권을 다시 없애자는 것이었다. 여당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판단,내무부장관이「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의 의견을 들어」임명제청하거나 임명하도록 한다는 수정안을 만들었고 지난1일 여당만의 단독국회에서 예산과 함께 기습적으로 통과시켜 버렸다.
「의견조회」를 거치게는 됐지만 내년 6월 뽑힐 직선 시장.도지사등이 자신의 참모중 일부를 중앙정부로부터 임명받게 된 것이다. 물론 야당과 지방의회가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당초 내무부는 개정안에서 지방의회가 만든 조례가 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자치단체장이 대법원에 제소하면 곧바로 그 조례의 효력이 정지되도록 하려는 시도도 했었다.
이 역시 지난 3월 개정된 것을 되돌리려는 시도였으나 여당측이 반대해 무산됐다.
이처럼 중앙정부나 정치권의「기득권」을 지키려는 집착이 생각보다 강한 것이 현실이다.
중앙정부가 종종 발표하는 시.도나 시.군.구로의 권한이양 역시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이양」이라고 발표하나 중앙정부와의 협의.동의등 전제조항을 붙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림수산부의 경우 올4월 농지전용 권한을 농업진흥지역에서는 3정보 미만,그외 지역은 규모에 관계없이 도지사에게위임했으나 농지개량시설 설치.도로건설.공공용 시설설치등에 대해서는 농림수산부와 협의하도록 하는 단서를 달고있 다.
건설부의 경우 올해초 30만평방m이하 지방공단지정 업무를 시.도지사에게 넘겼으나 역시 개별조항에서는 건설부와 협의토록 해놓고 있다.
그나마 중앙정부는 권한을 내놓기가 아까워 이양보다는 주로 업무 위임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오희환(吳熙煥)박사는『48년부터 91년까지중앙정부가 시.도에 넘긴 사무 1천62건을 분석한 결과 권한이양은 6.5%에 불과한 반면 위임사무는 93.5%나 됐다』며『중앙집권 현상을 해소하려면 앞으로는 확실한 이양 조치를 많이 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는『이에따라 자치단체의 고유사무 비중은 높아야 37~47%에 머물러 자치행정에 큰 제약이 되고 있는 만큼 고유사무 비중을 75%까지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실정과 거리 지방자치의 헌법이라 할 지방자치법 자체에도 분권화에 역행하는 요소가 많다.
광주시의회 김재균(金載均)산업건설 위원장은『지방자치법 안에「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고 돼 있는 곳이 19개소,「내무부장관의 승인을 얻어」라는 곳이 10개소등 곳곳에 중앙통제가 가능한 규정을 두고있다』고 말한다.
지방자치법은 또 시.도의 기구.조직은 중앙정부가 결정하도록 하고 시.군.구의 조직에도 지방의회가 전혀 관여할 수 없도록 돼있어 지역실정에 맞는 행정기구를 만들기 어렵게 돼있다.
물론 아직 지방공무원에게 맡기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도 지나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치행정의 꽃이라 할 조례 역시 규정에 얽매여 자치단체나 지방의회가 창의적인 조례를 만들려다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부천시의회 강근옥(姜根沃)의원은『지방자치법에 자치단체와지방의회는「법령의 범위안에서 조례를 만들 수 있다」고 돼있어 중앙정부의 법령에 근거조항이 없는듯 하면 지역을 위해 아무리 좋은 조례안을 내놔도 제정이 되지않는다』고 토로했다.
***法개정 서둘러야 광주시의회 金위원장은『법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앙부처의 영(令)까지도 지방자치를 규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자치단체는 법령에 반하지않는 한 조례를 만들 수 있다」라고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자치가 정착된 미국의 경우 이미 1932년에『정책실험을 할수 있다는 것이 자치제의 행복한 결과이므로 중앙정부는 지방의특수성을 무시한 통제를 해서는 안된다』는 대법원판결로 분권화의기틀을 다졌다.
「맥도널드(미리 만들어져있는 햄버거)對버거킹(고객 취향대로 만들어주는 햄버거)판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판례는 한 주(州)정부가 공기업으로 얼음공장을 하려하자 연방정부가『행정기관은 이익추구를 할 수 없다』며 제동을 건데서 비 롯됐다.
***州정부에 보조금 이 판결을 토대로 미국의 각 자치단체는창의적인 정책을 펼 수 있게됐음은 물론이다.
숙명여대 박재창(朴載昌)교수는『미국의 경우 연방정부가 주정부에 대해 일방적으로 명령하기가 어려워 독특한 보조금(Grant)지급 정책으로 연방정부의 시책을 지방에 확산시키고 있음을 참고로 할 만하다』고 말한다.
즉 연방의 어떤 정책(복지등)을 수용하고 관련 조건을 충족시키는 주정부에만 보조금을 주어 국가 전체 운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특별취재팀.정리=金 日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